<나의 단약 다이어리> 다른 대안들이 살아 숨 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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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제목 : 다른 대안들이 살아 숨 쉴 때


단약은 결코 무턱대고 결정할 일이 아니다. 약물 복용은 내 의지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던 증상들을 완화시켜 주었다. 불면증, 폭식증, 멈추지 않는 눈물,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흥미를 잃어버린 상태.

그 절박한 상태를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기에 약을 먹기 시작했다. 물론 약이 모든 증상을 없애주진 않았다. 약은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생활을 망가뜨리는 증상들을 조금 주춤하게 만들고, 내 감정을 느릿하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그래서 단약을 결심할 때는 언제나 ‘대안’이 함께 있어야 한다. 약을 대신할 무언가가 살아 숨 쉬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운동을 하고, 삼시 세끼 챙겨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몸은 달랐다. 운동은커녕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기 힘들었고, 삼시 세끼는 챙겨도 몸에 나쁜 음식만 찾았다.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운동하지 않는 내가 싫어졌고, 건강하게 먹지 못하고 불량식품만 폭식하는 내가 미웠다. 부정적인 생각에만 매달리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우울해졌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잠만 자기도 했고, 반대로 자고 싶어도 한없이 깨어 있는 불면의 밤도 수도 없이 겪었다.

내 의지대로 잘 되지 않았기에, 약을 먹으며 머릿속으로만 알던 것들을 실제로 해낼 힘을 길러야 했다. 약을 먹으면서 나는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폭식을 하다가도 멈출 수 있었고, 침대에 들러붙어 있다가도 겨우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렇게 조금씩 힘이 길러졌다.

‘그래, 약을 먹으면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 마음이 있었기에 나는 애를 써가며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감정의 높낮이가 잔잔해지는 순간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 ‘용기 내’라는 혼잣말을 반복하다가, 문득 ‘그냥 용감해지자’고 다짐하는 날이 온다. 안 올 것 같았는데, 결국 그런 날이 찾아왔다.


시간이 약이 되기도 했고, 나를 부정적인 늪으로 끌어당기던 외부 자극들을 하나씩 끊어내면서 그런 날이 가능해졌다.

물론 그 자극들을 떼어놓기 위해 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약이 아닌 다른 방법들도 필요했다.

‘약은 부작용이 있어, 약은 끊어야 해, 약은 좋지 않아.’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나는 역설적으로, 약을 끊기 위해 약의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단약을 하려면 약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살아 있어야 한다.


나를 괴롭히는 외부 자극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내야 하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단약을 감행하기엔 스스로 감당해야 할 증상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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