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효 친구 엄마이자 내게 한 살 언니인 정여사가 집을 지었다.
10년을 늙는다는 일을, 자폐성 장애 아이 하나와 젖먹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매일 현장을 방문하면서 꿋꿋하게 이뤄냈다.
집을 짓는 내내 나는 말렸다.
“언니, 지금도 늦지 않았어.”
아이 하나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매일 버거워하는 내게는 집 짓기라는 단어 자체가 꽤나 사치스러운 인생의 경험으로 느껴졌더랬다.
꽤 싸늘한 1월의 어느 날, 지효가 좋아하는 빨간색 오리털 파카를 입힌다.
한 손엔 지효손을 얹고 또 한 손엔 세제와 휴지를 들고 초인종을 누른다.
지효랑 같이 왔으니 오래 머무는 것은 가당치도 않을 일이니 커피나 한잔 얻어먹겠다고 한다.
지효는 3살 동생 손에 이끌려 2층에 올라간다. 커피를 다 마실 동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뒤통수가 따가워져서 다급히 올라간 2층 복도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아이들의 숨결을 마주한다. 3살 아이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지만 보살펴 주어야 하는 누나를 살뜰히 챙기기에 바빴고, 그 다정함이 마냥 좋은 지효는 말개진 얼굴에 연신 미소를 뗬다.
실로 오래간만에 마주하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커피나 한잔 할까 하던 초대는 지효가 잘 지낸다는 핑계에 힘을 얻어 저녁까지 얻어먹고 가는 호사로 이어졌다.
집에 가자는 엄마의 말에 반갑게 뛰어오는 지효에게 ‘뛰면 안 돼’라고 이야기하는 내 입을 막은 정여사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지효야! 맘껏 뛰어!!!”
새까매진 얼굴에 커다랗게 떴던 두 눈은 순식간에 스르르 감겼다. 아이는 침대에 쓰러졌고 간호사는 비상벨을 눌렀다.
그 벨소리가 병동에 채 울리기도 전에 나는 맨발로 스테이션에 뛰어나갔고, 이미 뛰어오고 있던 전문의 옷깃을 붙잡고 끌고 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나 보다. 이제 막 전문의가 된 의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청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손을 떨었다.
그때의 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제정신이 아니다. 초보 의사의 미숙함과 주저 따위는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던 자식의 생사를 앞에 두고 있는 어미는 있는 힘을 다 해 소리친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숨을 안 쉬잖아!! “
그 모든 상황을 차분히 수습한 사람은 담당 간호사였다.
아이가 쓰러지자마자 비상벨을 누르고 침대 위에 붙어 있는 산소통의 라인을 아이의 코에 부착했다.
떨리는 손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정신 차려야 한다고 지금 당신이 주치의라며 단호하게 다독이며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들을 차분하게 일러주었다.
이 지랄 맞은 상황이 처음이 아님을, 어쩌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할 만큼 간호사의 모든 움직임은 지금 나의 기억 속엔 마치 슬로 가 걸린 영상처럼 남아 있다.
이상하게 이 기억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남아 있다. 병실 밖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나의 시점.
어쩌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기가 너무나 두려운 나의 무의식이 이렇게 만들어 버린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아이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는 것과 기도 밖에 없었다.
내 존재를 부정하면, 이 모든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게 되고 싶었다.
‘엄마가 미안해. 낳아서 미안해…’
그때의 나는 소름 끼치도록 외로웠고, 두려웠고 또 고독했으며 동시에 이 고독을 느끼는 사치를 누리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자폐성 장애가 여자 염색체에 발생할 확률이 그렇게 낮다는데도 그 확률을 이기더니 주사의 부작용마저 쉽게 넘기지 않았다.
1/10000 , 지효가 맞은 주사제의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
담당교수는 아주 적은 확률이긴 하지만 주사제 부작용 중에 일시적 심정지 또는 호흡정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며 다른 일은 아닐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고 돌아갔다. 발바닥으로 떨어진 내 심장은 채 올라붙지도 않았건만, 아픈 사람들과 가족들로 가득 찬 병동은 그 불안전함 속에서 또다시 리듬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지효가 눈을 떴다. 눈물이 쏟아질 거라 예상했지만 나는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효 일어났어? 잘 잤어?’
엄마라는 이름은 신기하게도 필요할 때 초인적인 힘을 내어준다. 얼굴은 웃고 마음은 울었던 그 뻥 같은 현실이 존재했었다.
저녁을 먹고 퇴원하라는 의료진에게, 밤새 안녕한지를 확인하고 내일 아침에 퇴원하겠다고 큰 소리로 선언을 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무서웠고 또 내가 살기를 선택한 그 시골에서 문명의 이기가 가득한 3차 진료병원에 다시 돌아오는데 꼬박 1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이었다.
저녁 배식이 시작되었다.
지효는 본인 식사를 다 먹고 앞자리 동생의 다시마튀각까지 얻어먹고 있는 지경이었다. 지효로 꽁꽁 얼어붙었던 6인실 병동이 지효의 먹방으로 다시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 병동이라는 공간에서 절대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모든 엄마, 아빠의 소망이 지효의 피를 돌게 했을 것이다.
큰소리쳤던 나는, 응급실에 화상을 입은 돌 아가가 베드가 없어서 입원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퇴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 새끼가 살만해지니, 남의 새끼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세상의 모든 엄마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그제야 내게 작동했다.
새벽녘, 지효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깊게 잠이 들었고,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그만 내려놓자.”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5단계는 이렇다.
부정- 분노 - 협상 - 우울 - 수용
우리는 12년이 지난 그날에서야 ‘수용’이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더 이상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말없이 울면서 받아들였다.
‘‘언니, 우리도 주택으로 이사해 볼까?‘’
정여사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선 전세부터 알아보자!!!’’
8월 18일 월요일
3화 #2. 이 모든 걸 6개월 만에?!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