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장님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신다.
“사모님, 땅이랑 집은 내일 아니고 오늘 사시는 겁니다.”
주택을 찾는다고 하니 여기저기 부동산에서 연락이 온다.
조건을 내세운 건 남향 또는 남서향, 그리고 너무 크지 않은, 가능하면 단층 주택이었다.
+) 이곳의 겨울은 기대 이상으로 몹시 춥고 길었으며, 주변에 그 로망이던 2층 주택에 살던 이웃들 모두가 위, 아래층을 오가는 일상에 지쳐있었다.
마침 딱 맞는 남향에 너무 크지 않은 방 3개를 가진 단층 신축이 매매로 나왔다고 해서 설레어 집 구경을 갔다.
크기도 접근성도 다 좋은데, 집은 남향으로 앉혀졌는데 거실 전창이 동쪽에 나 있다.
“아니 왜 남쪽에 창을 안 내셨어요?”
기가 막힌 답변을 듣는다. “원하시면 남쪽에 창을 내어 드릴 수 있어요.”
네? 네?!!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을 보니 딱 우리 세 식구에 맞는 크기에 단층이고 구조도 좋고 거실도 오픈 천장에 마당 크기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보인다.
부동산에 연락해서 보러 가기로 한다. 왠지 느낌이 좋아 애 아빠에게 설레발을 친다.
“가서 괜찮으면 가 계약하고 올 거야.”
다 좋았다. 그런데 부엌 냉장고 놓을 자리에 문이 있다. 냉장고를 놓으면 문을 사용할 수 없다.
애석하게도 그 문은 세탁실로 연결되는 뒤 베란다 문이었다. 냉장고냐 세탁기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야 한다.
“사장님, 냉장고는 어디에 놔요?”
“아, 여기인데…, 이 집 설계를 남자가 해서 이렇게 됐다네요."
네? 네?!!
전세 물건은 귀했다. 전세 매물이 나오자마자 나가기가 바쁜 시절이었고, 더군다나 주택살이를 경험하겠다며 서울서 이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매매가 아니라 전세나 월세여서 물건이 나오는 족족 나가버렸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귀한 전세 매물이 나왔다고 해서 부랴부랴 달려갔다.
남동향에 정갈하고 적당한 크기의 마당이 잘 가꾸어진 집이었다. 집은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 되어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부부가 사시던 집인데, 딸네 근처로 이사 가신다면서 전세를 내어 놓으신다고 했다.
사모님은 차분하게 집 구경을 시켜주시면서 이곳저곳 손때가 닿은 곳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이렇게 정성이 깃든 공간이라면 나 또한 잘 가꾸며 지켜 나갈 수 있겠구나.
나이도 젊은데 왜 주택살이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구구 절절 사연을 쏟아 놓는다.
“아이고, 애기 엄마 여기 와서 살면 아이도 좋아지고 건강해질 거예요. 우리도 건강 찾고 나가는 거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손길이 감사해서 뒤돌아 연신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이사할 생각에 설레어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아서도 집안 곳곳이 생생하게 떠올라 잠을 설쳤다.
‘안방엔 장롱을 이렇게 배치하고, 그 작은방을 지효한테 주고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하면서 지효 마당에서 잘 노는지 확인하면 되겠다. 마당도 그리 넓지 않아서 관리하는데 큰 불편은 없겠어. 이렇게 또 살길이 열리는구나.’
다음 날, 집주인이신 사모님이 직접 전화를 하셨다.
남편분이 우리에게 세를 주는 것에 반대를 하신다며 조용하게 운을 떼셨다. 딸아이가 임신해서 아이 낳으면 봐주러 옮겨가는 것인데, 혹시라도 배속에 있는 아이에게 나쁜 기운이 갈까 염려가 많으시다고 했다.
“혹시, 저희 딸이 장애인 것이 걸리시는 건가요?”
조심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하시는 수화기 너머 혹여 숨결이라도 옮아갈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몰랐다. 내가 알겠다고 대답한 대상이 무엇인지.
속상해하는 남편에게는 또 알아보면 된다고, 널리고 널린 게 집이라고 여기 없으면 더 안쪽 동네 들어가도 된다며 호언장담을 했지만 내가 짓지 않은 죄에 미리 발목이 잡혀 여기서 꿈을 접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지나 보냈다.
내 팔자가 희망에 다가갈 리가 없지 하며 자책하며 보내던 어느 날 정여사에게 전화가 온다.
“지효야, 우리 집 지은 시공사에서 주택 시공 분양 간담회 한다는데 가서 들어보기나 할까?”
PT를 보는 내 눈은 이미 그곳에 집을 짓고 있었다.
예산도 맞을뿐더러,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라 이주에 대한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직 아무도 그 택지에 집을 짓지 않아서 허허벌판이라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누구에게 쫓겨날 일은 없는 거잖아!’
번쩍 손을 든 나는 이렇게 물었다.
“대표님, 6개월 안에 설계, 건축 그리고 입주까지 가능할까요?”
때는 5월 말이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 해 11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