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러려고 집 지었지

by 지효네

“너도 살고 싶고, 나도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설계사는 말이 없었다.

첫 미팅 때 받은 숙제지의 첫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때는 집짓기 붐이 일기 전이었지만, 나름 주택을 설계하는 사람들에게는 로망이라는 것이 있었다.

세로로 긴 아치형 창문이라던가, 2층 발코니의 작은 테이블이라던가 등등의 내 생에 다시는 없을 소망을 <나의 집>에 마음을 갈아 넣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지을 집에 불어넣을 소망이라고는 그저 너나 나나 모두가 그럭저럭 살아내는 집 외에는 간절함이 담기지 않았더랬다.

더 솔직하게, 더 담담하게 적어내자면 우리 세 식구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세상에 내려온 모습 그대로 살아낼 수 있는 그런 집이길 바랐다.

이렇게 적고 나니 이보다 더 강렬한 소망은 없다 싶다.


5월 말부터 시작된 설계 미팅은 7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이루어졌다. 매주 금요일 밤 수정된 설계 도면을 메일로 받아 인쇄해서 남편과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가당치도 감히 허락되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또다시 수정할 곳을 그리고 또 그렸다.

9월 4일에 착공, 첫눈이 내리던 11월 24일에 입주를 했다.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다 못해 튀겨 먹는 수준이었다.

허허벌판 나대지에 달랑 집 한 채. 그게 우리 삶의 터전이었다.

20여개의 필지 중 첫 집으로 건축된 지효네,입주 첫해는 마당에 고라니가 뛰어다니기도 했다.


애초의 목표가 ‘집’ 이 아니었다. 집에 무엇인가를 채우는 것으로 고민하고 그 고민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아 속상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집은 우리가 모시고 살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실현시켜 줄 수단에 불과했다. 살아낼 주체가 ‘우리’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가장 기본으로만 채우려 했고 시공 중에 생기는 자잘한 실수 등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당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풀어내려 애썼다.


너도 살고 싶고 나도 살고 싶은 소박한 집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곳곳에 우리 가족의 소망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단층 주택을 원했다. 2층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이토록 편안하고 푸르진 아파트를 버리고 주택을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주거공간과 수면 공간은 조금이나마 분리되기를 바랐던 희망 사항을 설계사는 현관 왼쪽을 수면 공간인 방과 화장실 그리고 드레스룸으로 오른쪽을 거실과 주방 그리고 다이닝 공간으로 배치해 주었다.

거실과 다이닝, 이라고 나누기에는 2초면 다다르는 동선이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공간은 다락방이었다. 단층 주택에 다락방 하나.

꼭 닫힌 방으로 꾸민 다락방은 세모 모양의 박고 지붕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때로는 서재로 때로는 창고로 그리고 아주 자주 ‘나를 숨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다.

다락에는 북쪽 동산 뷰를 즐길 수 있는 기다란 가로창을 내었다. 한쪽면은 꽉 막힌 벽으로 가끔 스크린이 되어주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설계와 시공 그리고 입주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목조주택이라 가능했다. 골조의 종류에 따른 장단점이 각각 있지만, 우리에게는 목조 주택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이 와닿았다.

가장 커다란 장점을 꼽자면 방음. 물론, 집 안에서의 울림은 콘크리트 철골 구조에 비해 취약하지만, 외부에서의 소음이 확실하게 차단되는 큰 장점이 모든 단점을 이겨낼 만큼 커다랗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우리는 집 내부에서 아이의 우는소리 같은 것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모든 패를 걸었던 것이다.

더 이상 아이의 우는소리에 다른 집의 눈치를 보며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 내가 바라고 지효가 바랬던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는 아이,

울어야 사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로 했다.

여전히 울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운다. 그러나 다그치거나 달래거나 하지 않고 지켜봐 준다.


지금 지효의 울음소리로 나의 오늘은 비극이 될지라도 사랑을 놓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 진짜 사랑을, 시작했다.



실컷 울어라!!

이러려고 집 지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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