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만난 지효의 활동보조 선생님 얼굴에는 수심과 불안이 가득했다.
사건은 그 전날, 선생님의 따님들이 서울로 나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진입하던 순간 눈에 띄던 강아지 두 마리에서 시작되었다. 왜 이런 곳에 아이들이 있을까 하는 의심 어린 눈빛을 던지고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 그 두 녀석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몇 시간을 그 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 아이들의 세상 전부였을 ‘주인’을.
밤새 선생님 따님들의 돌봄으로 목욕도 하고 밥도 먹던 아이들의 종착지는 유기견보호센터가 되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시골 똥강아지 믹스견에 나이가 제법 있고 더군다나 암컷인지라 입양은 바라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매일매일 전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곧 안락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편치 않은 소식을 접하기에 이른다.
입양.
마음은 아련한데 현실을 직시해 보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자폐성 장애 딸 하나도 절절매며 하루하루 버티는 내가 또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수백 번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으며, 데리고 올 강아지의 생을 생각하면 미안해지는 결론에 이르렀다. 애틋한 마음과 현실을 따로 바라봐야 했지만 강아지라면 질색하던 내 마음이 이 아이들의 삶 속에 자꾸만 참견하게 되는 것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냉정하게 마음을 먹고 현실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오후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 택배로 강아지 집 도착할 거야. 한 마리는 데려오자”.
이름은 쿠키였다. 오래전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은 마치 운명처럼 아이의 외모와 찰떡같이 어울렸다.
지효가 가장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인 <구름빵>에 나오는 강아지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쿠키였다.
반려견의 집사 생활은 예상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심장사상충이 발견되어 치료하는데만 100여만 원 그리고 중성화 수술에 3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했던 비용 문제부터, 자폐상 장애를 가진 지효에게 쿠키는 마냥 반갑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 가장 커다란 힘듦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시기에 겹친 지효의 사춘기는 예민한 성격을 심한 공격성으로 들어내곤 했는데 마침 만만한 대상이 하나 생긴 꼴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마냥 순하기만 한 쿠키는 지효의 돌발행동에 제대로 저항 한번 못해보고 매번 당하기 일쑤였고 그걸 바라만 보고 있는 엄마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 괴로움과 속상함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한 생명은 말도 못 할 만큼 새로운 세상을 펼쳐주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도 나를 이만큼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반가워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말 한마디 섞을 수도 없는 다른 종이면서 분명히 알아가게 되었다.
사랑, 서로에게 욕심 내지 않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쿠키는 실외 배변만 했고 또 스스로 몸단장을 깔끔하게 하는 성격이라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다만 아마도 먼저 키워졌던 환경이 사료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될 만큼 사료 거부가 완강하여 그것을 고치는데 무척이나 애를 먹였지만 지금은 서로 반반 타협하여 사료에 고기와 야채 토핑을 올려주어 영양과 스트레스 환경 모두를 다 잡는 방법을 선택했다.
난생처음 강아지 목욕을 시키던 날은, 식구들 모두 긴장을 해서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저항 한번 하지 않고 10여 분 만에 목욕을 마친 쿠기를 보고 이런 순둥이가 어디 있냐며 남편과 강아지 자랑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더랬다.
5년이 지난 지금, 쿠키와 지효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애틋한 자매관계로 발전했다.
어디서나 지효는 쿠키를 당당히 ‘내 동생’이라고 이야기하며, 학교에서 돌아온 지효의 곁에는 늘 쿠키가 납작 엎으려 언니를 지키고 있다.
시간은 많은 힘듦을 상쇄시키고 해결해 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쿠키와 지효의 관계를 바라보며 경험했고 배워간다.
우리가 구석기시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포식자이던 시기에 그들은 송곳니 매서운 육식동물에서 개로 진화했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충분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
-p.299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헤어 &바네사우즈, 디플롯, 2021
다정한 늑대를 데려와 인류 종이 필요한 개로 훈련시킨 것이 아닌, 늑대가 다정하기를 선택하여 우리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백 번이고 동의하게 된다.
강아지를 그렇게 싫어하던 나의 침대는 쿠키의 털로 점점 점령당하고 있다.
오늘 밤도 우리는 서로의 숨결에 기대어
한중의 밤을
같이 지낼 테지
한 생명의 온기가
이토록 다정한 것이라니
나의 온기도
너에게 따스함과 사랑이 되어
한없이 편안한 잠에 이르게 하기를…
+) 쿠키와 같이 있던 검은색 강아지는, 활동보조 선생님댁에서 입양하였고 지금 너무나 이쁨 받으며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