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곳이 어딜지라도

by 지효네

지효의 진료를 위해 도착한 도시의 도로변은 혼잡과 번잡 그 사이에서 사람들 사는 소리와 기운을 내어주고 있었다. 진료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혼잡한 도시를 잠시 누려보기로 했다.


올리브 영을 가기 위해 왕복 6차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 아니 생경,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 몹시 답답할 만큼 15년이란 시간은 나를 이 도시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가 주택살이를 하고 있는 양평에는 이렇게 커다란 왕복 6차선 도로가 거의 없고, 횡단보도를 마주하고 걸어 다니며 일상을 누리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늘 운전을 하고 다니니, 내가 지켜야 하는 신호등은 보행신호가 아닌 사람 기호가 없는 완벽한 동그란 초록색과 빨간색의 주행신호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길을 건널 때 정지선에 맞추어 서 있는 차들의 모습이 낯설다 못해 흡사 드라마에 나오는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착각을 들게 했다.

15년 전, 내가 이곳을 떠나 양평으로 갔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그 어린 나는, 그곳이 아니 지금 이곳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가면 나의 모든 어려움이 저절로 없어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내가 했던 것은 고작 똘똘 뭉친 오기를 용기로 가장해 부모의 도리라는 핑계에 기대어 떠나다 못해 도망친 것에 불과했다.

정말, 그런 답이 있을까?

이곳에 가면 다 잘 될 거야, 이런 사람을 만나면 다 좋아질 거야, 그 학교에 가면 모든 걱정이 날아갈 거야…

애석하게도 답은 이곳에도 없었다.

새로움이 주는 전환이 삶의 변곡점이 되어 주기는 하지만 인생의 숙제가 그 작은 변화로 사라지게 되는 마법을 부려주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답을 이곳에서 찾지 못했으며 또 여전히 다른 답이 있을 것만 같은 새로운 곳을 갈망한다.


어쩌다 시작한 주택살이도 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심정지 충격 이후에 그것을 빌미로 내가 열망했던 일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에 닿았다는 것, 그 용기가 내게 가져다준 많은 경험들이 삶을 더 풍요롭게 했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들 하나하나가 인생 그 자체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점이 어쩌면 그토록 열망하던 답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도시의 횡단보도를 건너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을 한다.

성인기에 접어든 중증 장애인 지효에게 더 많은 복지와 혜택이 존재하는 옛 터전을 멀리하고 이 고생을 하며 저 멀리에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답을 못 찾고 있고 그 어디에도 내가 생각하는 그 멋진 파라다이스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양평에 살아가고 있는 것을 몹시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를 찾아가고, 지효의 엄마로 두 발로 당당히 서야 할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주택살이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15년 전 부푼 꿈을 안고 이주한 새로운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반가움과 기쁨은 아주 잠시였고, 그들로부터 받은 아픔과 상처를 딛고 홀로서기까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이 지효네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시작된 주택살이로 나는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취향, 나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기보다는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데 시간을 내어주고, 나답게 사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주변에서 원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내 모습 자체를 인정해 주는 귀한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성장했다.

이 모든 것을 깨우치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여기 양평 때문인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양평이라는 지역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그때 나의 선택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지금 이곳에 내 삶을 지지해 줄 사람들이 곁에 있고, 몸 편히 뉘어 위로받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가장 완벽한 ‘나의 집’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살아보니 그렇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과 진심이 닿아야 비로소 삶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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