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제, 집에 가자

by 지효네

막상 멍석이 깔리면 춤꾼은 몸짓을 가수는 목소리를 잊는다더라. 나는 가진 재주가 많지도 않으면서 멍석이 깔리자 잊는 것을 넘어 돌돌 말려 증발할 지경이 되었다.

멍석과 함께 둘둘 말려 저 멀리로 데굴데굴 굴러가며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마음속과 머릿속을 그렇게 맴돌던 말들의 조합이 손가락 사이로 그리고 목구멍을 넘어 입술 사이로 내뱉어지는 것을 참지 못해 작가 신청을 했다.

그렇게 쏟아지던 내 마음의 소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안으로 안으로 숨기가 바빴다.

모니터를 켜고 글 쓰기를 누르면 깜박이는 커서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 결국엔 도망을 쳤더랬다.


주택살이의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도시로의 도망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 글이 뱉어지지 않았던 이유와 닿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특수학교 고등과정을 마친 아이는 다니던 학교의 전공과 진학에 실패했고 어쩌다 보니 도시의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여 학생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전문가의 손길에 더 닿게 해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 조금이라도 더 배운 사람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의 끝을 알면서도 밀어붙였다.

인생은 장애가 있건 없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일곱 번 넘어졌다 여덟 번 일어나려면, 넘어져서 까지고 피가 철철 흘러 곪아터진 자국을 남긴 굳은살이 있어야 된다는 암묵적 사실을 알게 된 꼰대가 된 아줌마는 여느 엄마와 다르지 않았다.

바람직한 어려움 그리고 적절한 좌절을 다른 곳이 아닌 특별한 보호가 있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겪어야 한다는 화려한 핑계로 아이를 그리고 나를 내 몰았다.

지금은 좌절이 필요한 시기야.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는 등교 거부로 의사 표현을 해 보았지만 엄마는 애써 무시했다. 아이는 온몸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눈과 귀의 염증으로 그리고 빠지는 머리카락으로.

‘엄마,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일까요?’


기회,

도시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제공했다.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며 느껴보지 못했던 복지를 그것도 여러 가지 만찬 중에 골라 먹을 수 있는 ‘선택’이라는 낯설지만 싫지 않은 벅찬 경험을 하게 해 주었다. 늘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던 어미의 쭈그러졌던 모습은 점차 옅어지고 당당하게 아이의 장애와 권리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점점 좋아졌더랬다.

그랬다. 돌이켜보니 도시의 학교를 고집했던 것은 학교를 다녀야 하는 딸의 행복이 아니라 엄마의 어화둥둥과 우쭈쭈를 위함이었다. 사실을 알면서도 놓기가 싫었다. 나도, 엄마인 나도 한번 좀 어깨피고 당당하고 싶었던 것이 무의식이라는 가장 만만한 곳에 숨어가며 해 보고 싶었던 평생을 꿈꾸던 엄마 놀이였다.


진물이 좀처럼 멈추지를 않았다. 귀에서 시작된 염증은 눈으로 올라갔고 병원을 다녀온 날은 조금 잠잠해졌다가 다시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머리를 감기고 말리는 동안 우수수 빠지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하얀 마룻바닥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간절한 외침에 이토록 귀를 닫았던 내가 부끄럽고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지효야”


지난 10월 초, 나는 아이의 자퇴서를 제출했고 내 딸은 중퇴라는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려 했던 나의 욕심은 나와 아이를 벼랑 끝에 내 몰았고, 그제야 그 최선이 우리를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차선이 최선이 되고서야 보이기 시작한 우리 집 지효네의 모습은 처참하기가 말할 수가 없다.

방치된 마당에서 매일 자라난 풀들은 기어코 나무의 키를 따라잡았고, 때맞추어 잘라주지 못한 꽃들은 말라비틀어져 집사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살았지만 살지 않았던 집, 매일의 삶을 이어갔지만 온기는 잃었던 나의 집이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애초에 이 집에서 꿈꿨던 작고 소박한 숨 쉬는 삶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벽지로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이 집을 앉힐 때 넣었던 상량판에는 이런 기도문을 적어놓았더랬다.

“이 집에 햇살이 비칠 때 성령께서 함께 오시고

이 집에서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소서

이 집이 비에 젖지 않도록 도우시고

탁한 공기는 창밖으로 내보내시어

저희의 영육이 건강하게 만드소서.

이 집에 깃들여 사는 모든 동식물을 축복하시고

저희 아이들이 쉬고 놀고 공부하게 하소서.

당신께서 머무시는 이 공간이 저희에게 행복이 되고

그 행복이 이웃과 나누어지도록

이 집과 저희에게 축복하소서 “

-가족을 위한 축복의 기도 중, 바오로 딸-


잊고 있었던 나의 소박하지만 원대한 이 집에서의 삶을 다시금 기억하게 해 준 내 딸 지효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하게 기다려 준 우리 집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평안과 평온,

고요와 고독

이 모든 것들이 온기를 기르는 힘이었다는 것을 이렇게 또 배우며 어른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