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와 우리 식구에게 던지는 질문의 제약 또는 한계를 만들곤 한다.
7년째 주택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 가족, 아니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댁의 따님은 좋아지셨나요?”
이다.
좋아지는 것의 기준을 보통의 삶을 영위하는 일반적인 매일의 루틴에 비교한다면 여전히 지효는 사회의 부적응자이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어떤 부분은 예전보다 조금 수월해졌고 수행하는 데 빨라졌지만, 또 어느 부분은 상당히 힘들어져서 부모지만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렇다면 ‘좋아지다’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1. 이전보다 나아지다
2. 마음에 좋게 느껴지다
출처 :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굳이 이 안에서 살펴본다면, 좋아졌다는 표현이 틀리지는 않다.
다만 질문의 좋아지다의 목적어가 아이의 장애 정도의 호전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는 대답은 하기 어렵다. 20여 년 차 장애인의 부모로 살아본 바, 좋아졌냐라는 질문의 목적어가 장애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장애는 다름으로 두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물론 잘되지 않는다. 그 다름이 일상을 흔들고 심적 피폐함을 더하고 보통이라는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생활들을 누리게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개선’해서 함께 갈 수 있게 반드시 나아지게 해야 하는 완치가 목표가 되는 질병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좋아졌다가 틀리지는 않았다는 나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나도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되짚어 보려고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사람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종도 없지 싶다. 우리는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때론 한 몸에서 어제와 오늘 다른 형태의 말과 행동으로 각자를 대변한다.
장애를 가진 모습도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오늘 이 어려움이 우리 가족 모두를 괴롭혔다면 내일은 오늘이었던 어제의 장막은 걷히고 또 다른 내일 오늘, 새 모습의 슬픔과 분노의 저 어려움이 그리고 기쁨과 행복이 함께한다.
물론, 주택살이를 하는 7년여간 지효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 성장했다는 표현에 담긴 것들이 모두 ‘좋아졌다’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아이를 둘러싼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본인의 의지로, 때로는 자발적 자연의 섭리로 피어나고 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장애라는 대상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로 각자가 지닌 살아나갈 힘 그리고 이 지구에 내려온 이유에 대한 고유성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좋아졌다는 표현의 목적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효는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지효는 자신이 가진 고유성을 다른 장소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표현하고 자신을 사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좋아진 점입니다.
가 될 수 있겠다.
물론 그 제한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외한다면 주택살이의 효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매일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 비가 내릴 때만 맡을 수 있는 쿰쿰하고 시원한 흙 내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나 혼자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는 공간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정원을 가꾸며 기른 꽃들로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계절마다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통해 시간의 이치와 흐름을 나만의 리듬으로 이해하며 살아가는 곳, 그곳이 지금의 지효네이다.
숨 쉬고 있음에 두 발로 땅을 내딛고 서 있는 일이 얼마나 위대하고 경이로운 것인지를 매일 아침마다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히 ‘효능’이라는 2음절 단어에 견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도 회화나무 가지 안쪽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린 새 가족의 힘찬 날갯짓과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순간 지구별에 또 다른 우주를 데려온 아기 고양이들의 가냘픈 울음소리를 포함한 강력한 생존신고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당신의 오늘은 어제보다 좋아졌나요?
나는, 그리고 지효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지효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