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같은 학년에서 영재 여러 명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두 번째 근무했던 학교는 그 지역에서 손꼽히게 학구열이 높은 곳이었다.
학부모님의 관심만 높은 것은 아니라 실제로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수학 과학에 대한 흥미가 월등한 녀석들이 있어서
늘상 수업 시간에 긴장도 많이 해야 했지만 매우 즐겁기도 했었다.
과학고를 희망하거나 자연계 진학과 진로 희망을 품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과학교사로서는 신이 나는 일이다.
나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거의 다 해보았다고 자부하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아니다 보니 수능 출제와 과학고 근무는 하지 못했다.
퇴직을 앞두고 유일하게 남는 아쉬운 점이다.
한 해에 같은 학년에서 영재 여러 명을 발견하는 신기한 해가 있었다.
가장 먼저 발견된 영재는 말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한 조용한 여학생 Y였다.
말소리 한번 못 들었는데 영재인 것을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과학에는 실험 후 작성하는 실험보고서라는 자료가 있다.
실험은 조별로 같이 하지만 보고서는 개인별로 작성하는데 이 자료만 보면 비범함을 대략 알 수 있다.
실험값의 정리와 결론에 이르기까지 논리적인 설명과 함께
핵심 요약을 잘 하는 것이 일단 과학 영재로서의 기본 자질이다.
개인 보고서 가장 마지막에 나는 이 실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과 함께 더 알아보고 싶은 점을 적게 한다.
질문을 적으라고 하니 할 수 없이 질문을 만들어서 쓰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질문 만들기를 잘 하는 사람은 그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한 사람이라는 뜻과 같다.
게다가 그것이 창의적인 질문이라고 한다면 영재성을 나타내는 맞춤 힌트이다.
Y를 주시하고 있었다가 영재라고 결정을 내린 결정적인 계기는
여름방학 과제로 부여된 탐구보고서 심사를 했었을 때이다.
너무도 훌륭한 보고서를 보고 나는 중학생의 보고서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대면심사 할 때 이것 저것 질문을 해보았더니 조목조목 자신의 실험과정과
논리적인 사고의 흐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분명 자신의 작품이었고 수준이 월등했다.
그 뒤로도 Y는 매달 진행되는 전체 조회 때마다 수상을 하러 단상에 올라가는 일을 반복했으며
과학고와 S대를 거쳐 미국 유학길에 올라 지금은 생화학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다.
또 한 명의 영재인 K는 Y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영재였다.
학급 회장도 하고 동아리도 이끄는 리더십을 겸비하면서 선생님들과의 소통도 잘하고
다방면을 넘어서 음악과 스포츠도 잘하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전 교과에 우수한 성적을 나타내는 학생들은 종종 있다.
그 당시는 고입을 위한 전국 모의고사가 많이 있었을 시기였다.
모의고사 전국 수석도 몇 번한 K가 과연 영재인지는 잘 판단이 서질 않았었다.
K에 대한 영재성을 확인한 계기는 체육대회 날이었다.
여학생들은 체육 종목 참가보다 응원상에 더 관심을 많이 보인다.
마침 나의 제자 중에 연대 응원단인 녀석이 있었다.
우리 반은 그 녀석의 도움으로 연대 응원 노래와 동작을 모두 배우고 도구도 만들어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응원상은 우리 반의 것이라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어서 운동장에 가보았더니 생각보다 운동장이 너무 크고 넓어서
우리가 준비한 응원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동작 움직임이 보일 것 같지도 않았다.
나 역시도 난감함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오랜 시간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우리 반 회장이던 K가 지친 친구들을 독려하면서
응원의 효과가 잘 나타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제시하는 것이 보였다.
응원 동작을 한 줄은 앉고 한 줄은 서면서 번갈아 해보자.(멀리서 더 잘 보일 것 같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구경에 집중하고(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다.)
경기 종목이 변경되는 그 틈에 집중하여 소리를 크게 내보자.(그 때 주로 응원상 심사가 이루어진다.)
집에서 가져온 다양한 응원 도구를 같은 시간에 집중 난타하여 신기한 소리를 내보자.(다들 쳐다보기 시작했다.)
영재성 중에 제일 두드러진 특징인 문제해결력이 발현된 것이다.
K의 활약으로 우리 반이 응원상을 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렇게 연습한 응원을 그 해 연대와 고대가 맞붙은 농구 경기 관람을 가서 다시 한 번 뽐내고 왔었다.
연대에서도 놀라면서 특정 선수 팬클럽이 출동한 줄 알았더란다.
이렇게 뛰어난 Y와 K가 같은 학년이어서 피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는데
바로 졸업식에서 누가 수석 졸업상 수상을 하는가 였다.
3학년의 성적을 보니 소숫점 아래 둘째 자리까지 똑같았다.
졸업 사정회 날 이례적으로 전체 교사 회의 주제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
수석이란 1명이어야 한다는 의견과 두 명 모두 월등하게 잘했으니 공동 수상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팽팽했다.
결론이 나지 않아 결국 부장 교사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모든 것을 위임하였는데(나는 K의 담임이었다.)
다음 날 알려진 결론은 두 명 모두에게 격려차 공동 수상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멋진 결론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1,2 등을 구분하는 곳이 아니고 학생들을 격려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 공동 수상이었을 것이다.
그 많은 과목의 시험 성적이 소숫점 둘째 자리까지 똑같기는 확률적으로 쉽지 않다.
참 K는 외고에 S대 4학년 때 행정고시에 차석 합격하여 지금은 모처의 고급 공무원이 되어 있다.
아마도 모처에서도 뛰어난 문제해결력을 발휘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과 함께 했던 그 1년은 교사인 나도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영재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만은 않지만 참으로 의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도 영재를 만날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