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듯 학생을 바라본다.
휴대폰에 있는 사진을 정리하는 중이나
아직 20% 정도로 진행률이 지지부진이다.
차량 주차한 곳을 잊어버릴까 찍어둔 사진이나
맛집이나 기타 정보를 포함한 스크린샷 사진 등은 쉽게 삭제 가능한데
학생들의 활동을 찍어 놓은 사진이나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식물 사진등은
비슷비슷하지만 삭제 버튼이 쉽게 눌려지지는 않는다.
일주일이면 끝날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마도 일주일쯤은 더 걸릴 것 같다.
이번 주 지하철 탑승 시간이 없어서 더 진도가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몇 번씩 아들 녀석이 휴대폰 매장을 돌아보는 것을 보니
자기가 회사폰으로 쓰고 있는 것과 내 휴대폰(같은 회사 제품이다.)을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 이전에 사진 정리를 마무리하려 마음먹었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13년 무렵인 것 같다.
그 이전의 나는 식물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라하였지만
꽃 선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고(며칠 뒤면 슬프게도 시들게 된다.)
집이나 학교 교실에서 식물을 키우는 일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학급회의에서 환경미화를 위해서
학급에 1인 1화분 키우기(초등학교때 해보았던 모양이다.)를 하자고 했을 때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서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니 아마도 2013년 이전에는
학교 운동장의 식물이나 산책할 때 공원의 꽃들이나 산에 있는 나무들에게
그렇게 눈길을 주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2013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 해. 토요일에 열리는 방과후프로젝트반에
과학에 관심있고
과학고 진학에 더욱 관심이 많던 학생들이
엄청 많이 지원을 했다.
그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과학고 추천서를 잘 써준다고 목동 지역 열성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거의 40여명이 되는 학생들과
토요일 오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기운을 소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도 열심히 하는 그들을 서포트하는 것은 힘들지만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양천구 지역의 공원이란 공원은 모두 탐방했다.
가장 손쉽게 무엇인가를 관찰하기 쉬운 곳이니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과학의 시작은 세심한 관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양천구 공원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었다.
파리공원, 목동공원, 양천공원, 신트리공원, 오목공원 등이었다.(지금같으면 양천구청에서 상을 주었어야 마땅하다.)
이것 저것 각 공원들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등을 이야기하다보니
각 공원별로 심어있는 식물이 모두 다른 것을 발견했다.
물론 그 주변의 학교에(신서중, 목동중, 신목중, 월촌중이 연구 대상이었다.) 심어있는 식물들도 모두 다 달랐다.
이 점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를 계속해보겠다는 멋진 친구들이 모였다. 5~6명 되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관찰하고 정리했던 목동 지역 공원과 학교의 식물 특징을 정리하고
그렇게 다른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의 원인 중 한가지는 토양일 것이라 생각하고
토양을 조금씩 샘플링하여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그런 분석을 해주는 곳이 서울대에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학생들의 연구를 도와주면서 나도 역량이 함께 늘어나는 법이다.
우리학교 토양도 비교하고 농대 교수님도 만나고 꽃집 사장님들도 인터뷰하고 해서
당시 우리학교의 빈 공간에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의 종류도 추천받아서
식재도 하고 키워보기도 하고 생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학교에 인조잔디 운동장이 만들어졌었고 남학생들의 쉬지않는 축구 사랑도 이어졌었는데
인조잔디 구장과 매번 식물을 위협하는 강한 축구공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조사해서
운동장 주변 화단의 가림막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었다. 이루어졌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해까지 그 연구는 이어져서 전국 동아리발표대회에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고
(동상인지, 장려상인지를 수상하였다.)
그때 그 기억을 함께한 녀석들은
지금 과학고를 거쳐서 박사과정 연구자가 되어 있기도 하고
치과 대학원에 있기도 하고
작년에는 2명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하여 인사를 오기도 했고
(그날 우리 아이들과 한 시간 수업을 같이 받고 갔다. 학생들에게 롤모델을 보여준 셈이다.)
모두가 자연계를 선택하여 우리나라 과학계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이 정도이긴 하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목동지역의 그 빡센 학원 스케쥴 사이에서
나와 함께 한 연구 활동이
아마도 그들에겐 첫 자율 연구였을 것이고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었을것이라고 생각되어지지만
그 연구를 끝가지 함께 마무리하고 발표하러 대전에 갔던 그 시간과 기억들은
그들의 이력서에 적을 정도는 아니어도
큰 경험이었음을 모두가 인정할 것 같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영재였음이 틀림없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찾아보고 살펴보고
당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영재의 특성을 지닌 학생들이 확실했다.
나는 그런 영재들에게(똑같은 사람은 없다.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이라도 물을 주고 격려하는 과학교사였음이 자랑스러운 아침이다.
오늘은 명절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아침이다.
내가 꼭 오늘 해야만 할 일은 없지만
아들 녀석 도시락을 싸고
출근길에 같이 나가서 학교에 가려 한다.
2월 말, 마지막 교사 연수 자료를 PPT 로 만들어야 하고(집 노트북에서는 PPT 가 안된다.)
마그네틱이 고장난 듯한 카드도
재발급 받아야 하고
여러가지 잡무를 처리하는 오전 일정을 보내려 한다.
그리고 일반고 학교 발표를 보러오는
졸업생들에게 마지막 눈인사를 하려 한다.
그들에게도 나의 격려와 응원이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