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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영재 이야기             열한 번째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게

by 태생적 오지라퍼 Feb 27. 2025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영재교육 기관은 영재고등학교이다.

과학고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영재고등학교와 과학고는 분류가 다르다.

영재고등학교는 거주지역에 상관없이 지원 가능하고

중학교 1학년이어도 고교 과정에 지원 가능하다.

물론 소정의 선발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하고

그 선발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물론이다.

전국에 8개의 영재고에서 대략 1년에 900명 정도를 뽑으니

수학, 과학을 좋아하고 천재, 영재라는 소리 한 번쯤은 들어본 학생들이

그곳의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영재고 선발에서 고배를 마신 학생들 중 일부가 과학고를 선택하기도 한다.

과학고는 외국어고등학교와 같은 반열인 셈이다.

구분 형태가 그렇다는 것이지 대학 진학 비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과학고는 수학, 과학을 전문적으로 집중 수업을 하는 형태

외고는 인문, 사회, 언어 분야를 전문적으로 집중 수업을 하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15년쯤 전 목동 지역에서 뛰어난 학생을 만났다.

뛰어난 학생들이 많았지만 특히 더 뛰어났다는 뜻이다.

중1이었는데 매시간 교무실에 내려온다.

교실에서 친구들과의 대화는 너무 심심한 거다.

주로 수학, 과학 선생님 자리를 빙빙 돌면서

어느 날은 신경외과적인 내용으로

어느 날은 천체물리적인 내용으로

그리고 어떤 날은 수학문제를 들고 와서는 선생님들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많은 수업과 기타 업무로 힘든 선생님들은

그 짧은 쉬는 시간에 할 일이 너무 많다.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간식도 먹어야 하고

담임반의 현안도 해결방법을 알아봐야 하고

결국 1학기가 마칠 때쯤에 그 친구는 교무실에서도

큰 재미를 못 느낀 듯했다.

교실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친구들이 너무 떠들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공손한 어투로 <제발 조용히 해줄 수 없겠니?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 없어>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그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서

(한 반에 거의 35명 정도, 1학년에 17 학급의 거대 학교였다.)

나는 가끔 뇌와 블랙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물어봐주는 정도로밖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던 친구가 부산에 있는 영재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누구보다도 기뻤다.

<이제 조용히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겠구나.

이야기를 함께 나눌 동료들이 있겠구나>

그런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학교 초유의 사태인 조기졸업에 대한 여러 가지 관련 업무를 진행하고

(그것도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 문서들을 새로 만들고 정정하는 업무가 추가되었다.)

무사히 조기졸업을 시켰다.

그 녀석의 봄날을 기대하면서.


한 학기가 지나고 그 친구가 영재고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중1을 마치고 오니 다른 친구들과는 2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그 시기의 2살은 엄청 큰 차이다.)

체구도 많이 왜소했고(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회성도 아직 많이 발달하지 못했던 단계였으니

기숙사 생활을 하고 하루 종일 붙어있는

영재고 시스템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년쯤 뒤 자퇴 소식이 들려왔다. 안타까웠다.

물론 나는 그 친구를 직접 가르친 적도 없고

해당 학년 담임도 아니었고

나와는 아무런 공식적인 접점이 없었고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

다만 영재교육을 전공하고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나는

특정영역에서의 영재임이 분명한 그 친구의 어려움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조금은 남게 되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영재고에 진학했었으면 어땠을까?

학업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함께 어울리고 지켜주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는 점을

조금 더 알고 느끼고 갔었으면 어땠을까?

그 치열한 학업의 현장에서 버티는 것이 오로지 긍정적인 사고와 멘털의 강인함만은 아닌 것임을

그 부모님께서 고려하셨으면 어땠을까?


그 뒤로 나는 목동 지역을 떠났고

그 친구의 추후 이야기를 알지는 못하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멋진 과학자가 되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때 나의 특기인 오지랖을 살리지 못했던 것을 조금은 후회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또 만난다면

나는 분명히 그 앞길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전할 것이다.

조기졸업을 하고 도전할 것인지

중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도전할 것인지는

본인과 학부모님의 판단이지만

그리고 학생마다 케이스는 다 다르겠지만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이야기는 한번 나누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아직 젊었었고 여유도 부족했었고

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강했었나 보다.

지금 근무했던 학교처럼 소규모 학교였다면 물론 상담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소규모학교에는 비밀이 없고

모든 학생이 다 지도 대상이 되는 좋은 점도 있다.

영재이기에 더욱 힘든 삶이었을지도 모를 

그 녀석의 발전과 행복을 기원한다.

우주를 생각하고 만든 것 같은 나선형 건축물을 보면서

특별했던 그 영재가 기억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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