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식성은 유전 의존적일까? 환경 의존적일까?
유전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과학 전공자이니 유전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알고 있다만(무서울 정도이다.)
살다보면 이렇게까지 싶게 유전의 힘의 대단하다.
일평생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아프게 되면서 알게 되는 사실이 이건 뭐 <비밀의 숲> 수준이다.
안압이 높다고 한다.
가끔 눈의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고(이건 시아버님에게서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위암 판정을 받고 나서 알아보니 남편의 외할머니가 위암으로 별세하셨고(나는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시어머님도 초기 위암이라 수술 전력이 있다.
결혼하기전에 건강검진 결과를 교환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 것도 같다만
혈관 질환이 많은 우리집도 만만치 않으니 어쩌겠나.
환경의 힘인지 유전의 힘인지 알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식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날것이나 흐물거리는 것을 잘 먹지 못한다.
회나 초밥이나 연어나 생선 종류이다.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생선이나 날것의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멀미할때처럼 배가 울렁거린다.
그쪽으로는 코를 대는 일도 힘들다.
시장에서도 생선 가게는 10m 전부터 알게 된다. 피해가고 싶다.
그런 이유로 학교 회식을 횟집에서 하는 경우(예산관계로 아주 드문 일이지만)
나는 인기절정이 되곤 했다.
곁들임 반찬만 집어먹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회나 생선을 좋아라 하고
그 맛있는 고기에서는 냄새가 난다면서 도통 먹지를 않는다.
아프기 전에도 그랬는데 단백질 보충이 필요한
지금 이 시기에도 여전하다.
억지로 먹어보려해도 안된다고 하고(소고기국의 조그만한 소고기도 그것만 남겨놓는다.)
나는 소고기가 최고인 사람이다.
돈이 없어서 못먹을 뿐이다.
아프게 되니 그 좋아하던 회도 이젠 생각이 안난다고 한다.(암 환자는 날것을 먹으면 안된다.)
단 여전히 맥주 한잔 생각은 난다한다.
나는 평생 술 생각이 난 적은 없다.
술을 먹은 다음 날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고약한 숙취를 경험했을텐데 그게 좋을까?
난 몇번 안된 경험도 힘들던데.
술로 급다이어트는 가능하겠더라만.
여기서 퀴즈를 풀어본다.
생선을 좋아라하지 않는 엄마와
고기를 좋아라하지 않는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하나뿐인 아들 녀석은 어떨까?
다행이다. 없어서 못먹지 둘 다 잘 먹는다.
술을 좋아라 하는 아빠와
웬만해서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하나뿐인 아들 녀석은 어떨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술을 즐긴다.
종류도 가리지 않는 듯 하다.
오늘 남편은 4번째 항암을 하러 가는 날이다.
지난 주 검사 결과를 함께 들어보려 같이 길을 나설까 시도했으나
역시 칼같이 거절당했고
(일정이 유동적이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해서 안된다고 한다.
내가 같이 있으면 신경쓰여서 본인이 더 힘들다고 한다.)
8시 혈액 검사가 끝나고 먹을 간단한 것들을 포장해주는 것으로 배웅을 한다.
사과 반의 반을 행운의 7조각으로 자르고
조그만 귤 두 개를 넣고
어젯밤 맛나게 먹었던 공주밤팥빵(밤과 팥이 안달게 조화롭게 들어있더라)
1/4쪽을 넣어서 비상용 먹거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숨기는 것 없이 의사 선생님 이야기는 전달해주기로 약속을 받았다.
점심쯤 병원쪽으로 염색하러 나갈 예정이니(일부러 오늘로 예약을 해두었다.)
상황에 따라 몰래 합류하던지 해야겠다.
(어제 점심은 백화점 식당가 중국집에서
탕수육, 해물누룽지탕과
아주 적당하게 작은 양의 짜장과 짬뽕으로 이루어진 세트 메뉴를 먹었다.
중국집 음식의 퀄리티는 짜사이에서 판가름 난다.
그게 맛난 집은 맛집이다.
순전히 내 기준이다.
어제는 맛집이었다.
점심을 맛나게 많이 먹었더니
저녁은 도통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게 문제이다.
이래서는 계획대로 벌크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무슨 일이든지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