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내다보는 중입니다.
공부도 집에서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형제가 많기도 했고 온전한 내 방을 가져본 적인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가능했지만
그것도 쉴틈 없이 문이 열리고 소리가 들리니 공부에 열중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임고 막판 대비 즈음에는 도서실에 일찍 도착해서 내 자리를 만들고 열공을 했다.
사실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다.
임고(당시에는 순위고사) 공고가 나고 한 달뒤 시험이었는데
공고가 난 시점에 나는 2학기에 진행되는 교생 실습 마지막 한 주가 남았을때였다.
알다시피 교생 실습 마지막 한 주는 오롯이 나의 수업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그 준비와 수업 진행만으로도 그 한 주는 병이나 안나면 다행인 셈이었는데
임고 발표가 딱하니 난 것이다. 3년정도 지구과학은 뽑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것도 서울에...
교생 실습을 마치고 3주앞으로 다가온 임고 대비 계획을 세웠다.
학교에서는 오랜만에 생긴 임고를 앞두고 수업을 모두 빼주셨다.(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고 그날의 공부 계획에 따라 가열차게 공부를 했는데(지금 인스타에 유행인 공스타그램 수준이었다.)
3주 정도의 단기간이니 가능했지 그 이상이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달리기이건 일이건 단거리가 좋다.
장거리는 너무 오래되어 힘이 빠진다.
임고에서는 평소 교육학에 관심이 많아서 추가로 교육학 강좌를 수강했을 정도였으니
아마 그 점이 많이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전공은 비슷비슷하니 교육학이 대세를 갈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당시에는...
잘 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여하튼 2등으로 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그 발표결과가 붙어있던 여의도 고등학교 정문 앞 게시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학교일은 주로 일찍 출근해서 진행하였다.
집에서는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일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던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방학때에도 가끔 일하러 학교에 나갔고
내가 했던 많은 일의 8할은 교무실 내 책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가끔 머리를 치는 통찰력있는 내용이 집에서 생각날때는 기록만 해두었다.
구체화는 모두 직장 내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대학원 수업을 위해서 잠시 휴직했을때도
대학원 내 자리에서 일을 했고
서울대나 과학전시관으로 파견 나갔을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는 쉬고 먹고 자고 그리고 아들과 남편과 투탁거리는 것이 다였다.
그런 내가 나의 출근 자리가 없어지고 나니
이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출근을 희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이 필요한 것인지 생산적이고 반짝거리는 일을 하는 내 자리가 필요한 것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이번 주 여러 가지 실패에 마음이 울적하니
컨디션도 나빠져서 목감기에 걸렸다.
심한 것은 아닌데 그래도 아무 한 것도 없는데 아프다니 더 기분이 나쁘다.
오늘 아침. 나는 마음을 바꾸어 먹으려고 생각했다.
내 방 침대에서 거실 식탁으로 출근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1인 기업 재택근무 프리랜서인 셈이다.
교육컨설팅으로 개인사업자 등록은 해두었으니 일거리가 없을 뿐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재택근무의 효율성은 높지 않다.
적어도 나 같은 스타일에게는 말이다.
그나마 거실은 사업장 느낌이 조금은 난다.
우리집 거실에는 소파가 없다.
이전에 쓰던 소파는 고양이 설이가 다 긁어서 이사할 때 버리고 왔다.
퇴직 선배님 말에 따르면 소파에 하도 누워있어서 허리가 나빠진다던데 적어도 그럴 염려는 없는 셈이다.
내 책상은 방에 있지만 그곳에서는 침대가 있어서 눕고 싶어진다.
그리고 고양이 설이의 활동 반경이 한 눈에 파악되지 않아 다소 불안하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화장을 한다.
(사실은 주름을 감추는 변장 수준이다.)
그리고 거실 식탁으로 와서 노트북을 편다.
오늘 일정은 서류 작성 2건과 수업 프로그램 공모전 1건이 있다.
유튜브에서 일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오전에는 주로 잠을 즐기는 설이를 가끔 쳐다보면서
이 글을 쓴다.
나는 현재 근무중이다. 막간의 틈을 이용하는거다.
오후에는 수업 프로그램을 위한 외부 출장이 있다.
물론 출장비는 없다.
프리랜서의 삶은 지루한 기다림이다.
그러나 저 사진속의 새처럼 높은 곳에서 더 먼곳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련다.
그래야 남은 생이 살만하고 지루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제 겨우 퇴직 4주차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