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

그래도 눈물나게 아름다운 하루였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회복에 전념하겠다고 글을 썼으나

눌은밥 정식을 먹고 나니 힘이 다시 생겼다.

로봇인가보다. 충전이 되면 쌩쌩하게 돌아다니는 로봇 말이다.

일단 오늘 보내야만 할 우편물 처리를 위해

근처 우체국을 방문한다.

버스 한 정거장 거리인데 비가 조금씩 내려서

그냥 걸어가기로 한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느니 요즈음 못 걸었던 주변이

어찌 어찌 변화했는지도 살펴볼 겸 걷는 것을 택한다.

처음으로 새 학교 공식 주소가 적힌 편지 봉투에 내용물을 넣고 보내는 중인데 주소가 틀리다고 나온다.

아마도 예전 주소가 쓰여있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등기라서 정확한 주소를 써야한다고 다시 쓰라한다.

학교 공식 편지 봉투인데 이것은 웬 말이 안되는 시스템인가 싶은데

내일 행정직원에게 굳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주소가 쓰여져있는 봉투가 많이 싸여있는 것을 보았으니 더더욱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긁어 부스럼이 되기는 싫으니 입을 다물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려 한다.


갑자기 생긴 힘을 주체하지 못해 일을 하러 나섰다.

커뮤니티센터 카페에서 일을 하면 효율성이 높았던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뿔싸. 카페 출입문에 카드키를 대니 <권한이 없습니다.> 라고 메시지가 뜬다.

삼 세 번을 대보았는데 모두 그런 메시지이다.

어제까지 말짱하게 출입하던 아파트 단지 카드키인데

갑자기 먹통이 되었나 싶어서 카페 안을 살펴보았더니

커피를 내려주는 직원도 있고

세 명의 젊은 아주머니들이 수다에 한창이다.

할 수 없이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기로 한다.

데스크 직원이 카드를 점검해도

그리고 사우나 출입을 위한 키오스크에 대 보아도

잘 된다. 이상한 일이다.

친절한 데스크 직원이 함께 카페로 가보자고 한다.

입구에서 알았다.

10시 오픈인데 9시 57분이라 안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신기하기도 하다.

이미 내부에 들어가 있는 저 세 명의 아주머니들은 어떻게 들어간 것이며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오픈 시간을 확인했을 것이다만)

만약에 시간때문이라면 <영업 시간 이전입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야 마땅한 것이지

<권한이 없습니다.>는 무슨 생뚱맞은 메시지인가?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불편 사항을 거론하지 않는다.

카페까지 동행해준 데스크 직원을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상황에서 더 이야기를 해보았자 민폐녀에 등극할 뿐인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만의 비밀로 덮어둔다.(아니다. 오후 산책길에서 남편에게는 이야기를 했다.)


오후 산책 겸 반찬 가게 방문을 마치고 나니 아직은 땀이 났다.

산뜻한 내일을 위해 커뮤니티 센터 사우나를 사용하려고 카드를 댔더니 <등록되지 않은 카드입니다.> 메시지가 뜬다.

아까 무언가 작업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싶어

의심의 눈초리로 카드를 살펴보니

이번에는 아파트 단지 카드가 아니라

내 신용카드를 가져다 댄 것이었다.

가지가지 한다.

오늘 나에게 억까를 하는 것들이 왜 이리 많나 싶지만 이것도 나만의 비밀로 입을 다문다.

오늘 도대체 몇 가지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것이냐?

가상의 스토리로 써도 이쯤이면 주작이라고 의심받기 딱 좋겠다.

어쩌겠냐. 이렇게 하나씩 나사가 빠지고 헐거워지고 있는 시기인 것을...

다행인 것은 남편보다는 훨씬 똑똑하다는 점이다.

물론이다.

내가 세 살이나 어리고 남편은 지금 병환중이다.


그리고는 인스타에서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

가을 문구가 올라온 것을 보았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그 곳에 걸리는 문구는 매번 가슴을 때린다.

어제는 <들꽃> 노래와 가사가 이 시간에 가슴을 때리더니

오늘은 이 문구가 가슴을 때린다.

많이 아프다.

비밀을 많이 만들었지만 오늘도 눈물나게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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