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사랑 중이다.
오늘의 첫 미션은 9시 30분 청소기 방문 A/S를 받는 일이었다.
얼마 전부터 흡입용 로봇 청소기에서 탱크 소리가 나고
흡입 기능도 엄청 떨어진 것 같고
자꾸 가다가 물건에 부딪히는 등 AI 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고
(대부분 외출 시 눌러놓고 나가서 조기 발견을 하지 못했었다. 그게 패착이다.)
아마도 나의 고양이 설이의 털이 어딘가에 깊숙이 들어가서
전자 기기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과학적 추론을 하고는 있었다만
구체적인 근거와 증거자료는 없다.
지난번 탱크 소리를 냈을 때는 아들 녀석이 걸려있는 고양이 희귀 장난감인 고무줄을 제거하기도 했었고
흡입한 먼지의 95%는 고양이 털이므로
저 로봇 청소기도 나름 엄청 힘든 과업을 수행한 것임에 틀림없다.
A/S 담당자가 보더니 바퀴 하나는 헛돌고
전진을 못하고 후진만 하며
분해해서 살펴보면 흡입 능력을 좌우하는 내부 모터에도 이상이 있을게 틀림없다고
모두 다 수리를 할 경우 50만원이 훌쩍 넘는다고 진단을 내린다.
3년 반 정도를 사용한 것인데
그리고 그 당시 로봇 청소기는 꽤 고가였는데
이리로 이사 오면서 정말 큰 맘을 먹고
흡입용과 물걸레용 로봇 청소기을 각각 장만한 것인데
물걸레용도 머지않아 같은 길을 갈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요즈음은 두가지 기능이 한번에 되는 로봇 청소기가 대세이다.
나를 위로하느라 A/S 담당자가 한 마디 한다.
<고양이는 그래도 무섭다고 로봇 청소기에 올라타지는 않는데
강아지들은 신난다고 올라타서 눌러대는 통에 수명이 더 빨리 줍니다.>
다소의 위로가 되기는 한다만
아마 저 청소기를 분해하려고 몸체를 여는 순간
백만 스물 한 개의 고양이 설이 털이 날라 다니는 장관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가죽소파를 버리고 왔었다.
물론 고양이 설이의 막강한 발톱의 힘 때문이다.
가죽 소파가 자신의 발톱 능력 건강치의 척도라도 되는 양
물어뜯는데 있어서 과제집착력이 뛰어났다.
발톱의 힘이 약해지면 고양이의 야생성이 사라지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마치 아픈 남편이 걷기를 안해서 못 걷게 될까봐
다리 근육이 빠질까봐 두려워 계속 걷는 것과 비슷하다.)
덕분에 소파에 누워서 티비만 보는 그런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고(나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
거실에는 식탁과 의자만 있고 식탁이 내 작업대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그런데 추가 문제가 또 발생한다.
소파가 없으니 이제 식탁 의자 가죽으로 된 부분으로 발톱의 힘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스크래치가 있으나 그것은 별 도전의식이 생기지 않나보다.
원래 하나의 퀘스트를 해결하면 더 위 수준에 도전하고 싶은 법이다만
나의 고양이 설이는 더더욱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스타일인가보다.
이제 내가 주로 앉아서 작업하는 식탁의자 말고
나머지 두 개의 의자는 날로 날로 처참해지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스틸로 된 식탁의자를 찾아보기도 했으나
가뜩이나 엉덩이에 살이 없는 나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일단 이사가 결정되면 생각해보자고 결정을 미루어 두었다.
고양이 설이가 집에 오기전.
나는 때때로 이쁜 꽃들을 조금씩 사서 자칭 나만의 갬성을 지키는 로맨티스트였다.
설이가 오고나서는 그 꽃들의 향이 고양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알 수 없고
그 꽃을 파헤쳐 놓을까 무서워(그것을 치우는 일이 두렵다.) 꽃을 사지 않았다.
선물로 받은 꽃만 할 수 없이 가져다 놓았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집에는 대파와 고구마를 물에 담가놓은 수경재배 컵을 제외하고는 식물이 없다.
그리 식물 사진을 주구장창 찍어대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산책하다 눈에 담고 사진에 담는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할만큼
고양이 설이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식탁의자는 그렇다고 해도
청소기는 시급한 해결이 필요하다.
렌탈을 할지 새로운 것을 구입할지 그렇다면 어디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해야할지등을 탐색해야하는데
나는 강의 자료 탐색은 즐거우나
이런 물품 구입 탐색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
나에게 이런 불편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고양이 설이는 소중하고 이쁘다.
내가 혼자인 그 시간을 묵묵히 함께해준 동반자이다.
어렵다고 불편함이 있다고 동반자를 버리거나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다.
내가 점심인 김치순두부를 끓이고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오고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이 순간에도
같은 공간 내 시선안에 나의 고양이 설이는 함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진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