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계절을 앞서가는것인가?

아직 입지 못한 여름옷이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패셔니스타는 절대 아니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실험적 패턴은 아니지만 무언가 포인트 한 가지쯤은 숨겨놓았다.

한때는 옷구경 하는게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사람이다.

물론 눈으로 구경만 한다. 대부분.


그런 내가 이런 간절기가 되면 옷입기에 주저하게 되는 포인트가 있다.

계절을 앞서 나갈것인가? 말것인가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고

셔틀버스나 강의실의 에어컨이 힘들어서

긴 팔 옷이나 가디건 혹은 자켓을 가지고 다닌다만

아직 멋지게 코디해서 입고싶은 착장이 남아있는데

기온이 빠르게 낮아질까 걱정이다.

출근을 위해 구입한 옷도 있고

너무 더워서 도저히 격식을 차려서 입지 못하고

출근하기만을 기다렸던 옷도 있는데

한번도 못입고 두꺼운 옷을 꺼내게 될까봐 걱정이다.


신혼초 어느 모임에 부부동반으로 갔을 때

그날의 내 옷차림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남편이 뭐라 한 소리 했었다.

<옷은 계절에 앞서서 입는거야.>

상견례날인가 고르고 골라서 단정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시어머님이 한 소리 하셨었다.

<화사한 옷을 입고 와야지 꼭 절에 가는 옷 같구나.>

입덧 지옥에 빠져있었을 때 동료교사가 한 마디 했었다.

<크리스마스 행사할때 입는 옷 같아요.>

평소에 패션 감각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수가 되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는 계절에 앞서는게 가능한데

봄에서 여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추위때문이다.

회색을 엄청 좋아라했던것은 맞다.

이제는 늙어서 조금 덜해졌다만

지난번 또 회색 비구니 바지와 유사한 형태를 구입하고는 아이고야 했다.

털 복실복실한 상의와

무릎 튀어나온 모직 바지는 가급적 입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가 꽤 오래가는 편이다.

쿨한척 하는데 꽁한 성격이다.


그나저나 조금은 덜 늙어보이고 에너자틱해보이며

패션 감각이 있는 노교수님이 되고싶다는 나의 생각은

명강의자 못지않게 포기할 수 없는 바램이다.

아직 여름옷을 정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파일에 그날 강의 주의할 점과 의상을 함께 기록해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주 부터 조끼를 레이어드하고

긴팔옷을 하나 더 본격적으로 걸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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