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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62

주말인데 못쉬고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2시간 분량의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 강의보다

3시간 분량의 <인물로 보는 과학의 역사> 강의가 1.5배는 더 힘들다.

물리적인 시간의 양도 작용하겠으나

다양한 과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업적을 아주 압축해서 설명을 해야된다는 압박감이 없지는 않다.

물론 그렇게 한 줄로 그 레전드 과학자들을 요약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다.


대부분 과학사라 함은 소크라테스 시절에서부터 현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식의 강의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맨 마지막 강의가 우리나라 과학에 대한 이야기이고

마지막 강의를 할 때쯤은 기말고사 기간이 되어서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최악의 시기가 된다.

나는 이 프레임을 과감하게 바꾸어본다.

우리나라 과학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첫 시간이 과학에 대한 본성과 특성 및 강의 전반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의 느낌이 강했다면

2주차 수업에서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역사를 살펴보고 현재 우리나라 과학의 위상과 함께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다.

물론 응원은 마음만 보낸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고

근대와 현대까지 우리나라 과학 발달을 총정리하는 조별활동으로는

조금은 생뚱맞게(원래 나는 생뚱맞은 일을 잘 한다.)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과학자들 중에서 새로운 기준을 하나 세워서 그들을 정리해보는 활동을 준비했다.

물론 수업 시간에 다루지 않은 과학자들을 검색해서 추가하는 것도 괜찮고 딱히 제한 조건은 주지 않았다.

그들이 창의적인 주제를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과학자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치면 아마도

그 과학자와 업적에 대해서는 당분간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것이다.

나는 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연대표는 아날로그적으로 크레파스와 전지 사이즈에 그려서 전시하는 것으로 했다.

다양한 전공을 고려해서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주제와 산출물이 나오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월, 금 같은 강좌에서 나온 주제 중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것은 다음과 같다.

<지금 시대에 태어나서 그 연구를 진행했더라면 돈을 가장 많이 벌었을 것 같은 과학자 BEST 5> : 1등은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배추 모종을 연구한 박사님이다. 이유로 우리는 김치를 사랑한다라고 써놓았다.

<안경남 과학자 줄 세우기> : 연구를 너무 많이해서 시력이 나빠진 안경남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시력과 맞바꾼 연구 주제를 적어두었다.

<세종과 보이즈> : 세종대왕 시절의 많은 과학기술자들을 각각 특성에 맞추어 보이밴드로서의 역할을 부여했다. 단 밴드 역할은 인물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한다.

<전공과 다르게 독립운동에만 몰두했던 과학자> : 시대 환경을 반영하여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독립운동에 전념했던 비운의 과학자들을 모아두었다. 과학과 사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부각시켰다.

<노벨상을 받을 뻔한 과학자 시리즈> : 우리나라 과학자 중에서 노벨상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연구를 진행했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선정했고 물론 노벨상 수상 분야는 현재와는 다르게 스스로 결정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은 여러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노벨문어상을 수여한다고 써두었다.


그들의 산출물은 강의실 한쪽 벽면에 부착해두고

<과학적 사고와 상상력>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공정한 심사를 부탁하려 한다.

어느 것이 최우수작이 될런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이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대다수이다.

나는 최우수작을 만든 조에게 줄 선물만 준비하면 된다.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이런 재미있는 수업을 했다고

지나가던 친구에게 자랑하고 보여주는 학생이 있었다는 점이다. 2주차 최고의 순간이다.

물론 이전에 한번 소개한 과자를 관찰하고 기준을 설정하여 분류한 과정과

대학 교원 심사 과정에서 시연했던 질병이 원인을 찾아내는 추론 과정도

모두가 즐거워하면서 열심히 참여해주었다.


2주차 강의를 이 글로 복기하면서 마무리하고

나는 3주차 강의 준비를 가열차게 준비 중이다.

강의 준비는 바꾸고 수정하고 추가하고 빼는 고민의 과정의 연속이다.

일단 내가 만족하는 수준까지는 준비하나 최종본은 월요일 수업을 해봐야 확정된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을 반영한 실천은 많이 다른 법이다.

가끔 딱 맞아떨어질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시간이 모자라고 어떤 때는 남는다.

남을때가 훨씬 마음이 편하니 일단 준비는 최대치로 하는 것으로.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고 다음 주를 준비하는 날인거 맞죠?


(홍대앞 머리 염색하러 가다가 본 어느 문닫은 상점

셔터에 그려진 그림이다.

문을 닫아두었지만 영업의 의지가 보이는 곳이다.

언젠가 문을 열면 들어가봐 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다음 학기에 꼭 들어보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친구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게 열심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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