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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교수의 인터랙션 Aug 09. 2022

학생들을 ‘평등’하게 가르치는 방법

모두 다 ‘다르게’ 가르치면 된다


나의 초중고 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조용한 모범생이었다. 손을 들어 선생님께 질문을 하거나, 발표를 먼저 하겠다고 한 적은 아마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대학교 대학원 시절도 일정 수준의 참여를 해야만 하는 토론식 수업이 아닌 이상, 내가 먼저 발언을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항상 허리를 펴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등 ‘비언어적 표현’을 늘 해왔었다.


2004-5년 20대 초반에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처음 왔을 때,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너무나 자유롭게 교수에게 질문을 하거나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에 너무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족히 할아버지 뻘 되는 교수 수업에서 자기 도시락을 먹으며 수업을 듣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고, 교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그 학생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연세가 지긋하신 교수님 수업에서는 책상에 음료수도 못 올려놓았던 때라 나에게 그 장면은 정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교수님께 질문을 하는 것도 거의 상상도 못 했었다. 누군가 (아마도 고학번 선배님 들이었겠지?) 진지하게 질문이라도 하면, “자네 지금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무안을 주셨기 때문에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권위에 도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 더더욱 질문을 안 하고 조용한 학생으로 대학생활까지 했던 것 같다.


2011년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나는, 열심히 질문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교수님에 눈에 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었다. 전날 미리 공부를 하면서,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에 밑줄을 치고는 “내일 교수님이 이 부분을 얘기할 때, 꼭 손을 들고 질문해야지-“ 다짐에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가 할 질문을 미리 한다거나, 교수님이 그 부분을 짚어주지 않는다면 그 준비했던 질문마저도 못하고 수업시간에 “참여를 하지 않은” 학생으로 강의실을 나오게 되었다. 분명히 집에 와서 넉다운이 되어 침대에 누울 정도로 학교에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는데도 학기말에 “참여점수”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좌절감이란.. 수업시간에 딱 질문 하나만 하는 것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을 하였지만, 워낙 성격이 내성적이기에 그마저도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그랬던 내가 교수가 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 역시 같은 잣대로 내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학생으로서 겪었던 “수업 참여”에 대한 부담감을 잊은 채 말이다.  강의실에 가장 첫 줄에 앉아서 끊임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학생들과, 내가 “Do you have any questions?”라고 질문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드는 (대부분 같은) 학생들에게만 학기말에 수업 참여점수를 만점을 줬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조용하고 손을 들지 않는 많은 학생들은 내 수업에서 참여점수 만점을 받지 못했다. 내가 서운하게 생각했던 그 수업의 참여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앞줄의 누군가가 여느 때와 같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내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을 때, 두세 번째 줄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눈빛에서 10여 년 전 내가 느꼈던 ‘실망감’, ‘좌절감’을 읽을 수 있었다.


“아 이 친구들도 말하고 싶은 거구나.”  

그들에게서 내가 보였다.


이들이 조용하다고 해서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교수로서 다양한 채널을 마련해주어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학생들을 가르치고 몇 년이나 지난 후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그 이후에 나는 적극적으로 active learning, inclusive learning이라는 주제로 교수법을 공부했고 비로소 수업시간에 (혹은 수업시간 이외에)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었다. 그중에 두 가지를 공유하자면...


1분 멈춤

수업을 진행하다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I will give you one minute to think about my question. After one minute, I may select any of you to share your thoughts.”

이렇게 1분을 주고는 기다린다. 사실 말이 1분이지 강의실에서의 1분은 정말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애플 워치로 1분을 맞추고는 나는 일부러 강의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자기들이 콜드 콜링(비자발적으로 시켜서 대답하게 하는)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부분 본인의 답변을 준비한다. 이렇게 1분을 주고 나면, 자발적으로 손들지 않은 학생들의 답변을 유도하는 것도 한결 수월해진다. 내가 준비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학생들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명의 이야기를 들을 후에 비로소 자발적으로 말하고 싶은 학생들을 시키게 되면, 소수에게 편중되지 않은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일단 준비한 학생들의 눈빛은 “저를 지목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고 나면 뭔가 서로 통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 뿌듯해진다.


수업 외 시간 채널 활용

미처 수업시간에 참여를 못한 학생들이라 해도, 여전히 수업에 참여할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tool을 활용한 수업 외시 간 참여이다. 내가 있는 학교에서는 Blackboard라는 Learning Management System을 쓰는데, 그 시스템 안에 토론을 할 수 있는 섹션이 있다. Discussion activity를 통해 그 주에 해당하는 주제에 대한 글이나 영상자료를 주고, 자기들이 느낀 점을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한다. 당장 수업시간에서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토론 기회를 통해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얘기할 수 있다. 단순히 자기 생각만 포스트 하는 것이 아니라, (full point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학생들의 포스트에도 답을 하도록 장려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업 외 시간에 토론이 진행이 된다. 온라인 상에서는 나 스스로 참여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가끔씩 정말 조용했던 학생이 온라인 상에서 가장 먼저 의견을 개진한다거나 적극적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을 종종 발견하면서 이런 수업 외 asynchronous 참여방법이 그들에게 소통의 창구 혹은 수업 참여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절대로 손을 먼저 들어 질문을 할 리 없는, 하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내 강의를 따라와 주고 있는 많은 수의 내성적인 학생들이 내 수업에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런 수업환경이 결국은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10여 년 전, 수업을 나오면서 느꼈던 나의 좌절감이 이제 그들에게는 느껴지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나는 다음 학기에도 모든 학생들을 다르게 대하면서,  평등하게 가르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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