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금요일, 수술을 미룬 내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행복해지는 금요일이었지만, 아침부터 내가 만난 사람이라고는 병원 관계자뿐이었고, 나눈 대화의 주제는 오직 갑상선암뿐이었다.
<림프절 전이가 없는 1cm 이하의 작은 갑상선 유두암 = 저위험군 환자>
예전에는 이런 경우에도 무조건 갑상선을 제거했지만, 최근 추세는 저위험군은 환자와 충분한 상의 후 환자에게 선택권을 맡기는 경우가 확실히 늘었다고 한다. 내가 가진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1. 작은 갑상선암이 커질 때까지 지켜보기 = 관찰
2. 갑상선 절반 제거하기 = 수술
3. 갑상선 전부 재거하기 = 수술
나는 세 갈래 길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그 순간 떠오른 건 오래전 읽었던 한 편의 시였다.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늘 생각났던 구절.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을 했다. 어떤 선택은 쉽고, 어떤 선택은 어려웠다. 점심 메뉴를 무엇으로 할까 같은 가벼운 선택은 쉬웠다. 잘못된 선택을 해도 다음날 다시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몇몇 선택은 한 번 내리면 돌이킬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를 선택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대학교였지만 19살 이후 지금까지의 내 삶을 결정지은 선택이었다. 19살 어린아이의 단 한 번의 결정이 내 삶을 교사라는 직업에 묶어두었다. 그 뒤로 군대, 연애, 결혼, 대학원… 인생을 결정짓는 선택들은 줄곧 이어졌다. 모든 길을 걸을 수 없으니 결국 하나를 골라야 했고, 다른 길에서 만날 수 있었을 결과는 영영 알 수 없었다. 내가 고른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병원에서의 긴 대기 시간 동안, 나는 휴대폰으로 ‘갑상선 포럼’ 카페를 들락거렸다. 검색 기록은 암 관련 글로 가득했고, 댓글과 후기를 읽으며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갑상선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나는 선택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암’이라는 글자가 주는 무게,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그리고 잘못된 선택이 내 몸의 건강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금요일. 무거운 선택은 잠시 내려놓고, 가벼운 선택을 붙잡고 싶었다. 저녁 메뉴를 떠올렸다. 피자... 여러 맛이 스쳐 갔고, 결국 하나의 맛에 마음이 멈췄다.
대학 시절, 나는 피자에 미쳐 있었다. 마치 어릴 적 못 먹었던 한을 풀듯, 일주일에 한두 번은 피자를 먹었다. 해장 음식도 늘 피자였다. 친구들이 뼈해장국이나 짬뽕으로 과음을 달랠 때, 나는 피자를 시켰다. 피자헛, 미스터피자, 도미노피자… 자취방 책상 위에는 늘 배달책자가 쌓여 있었고, 누가 맛있다고 이야기한 피자집은 빠짐없이 시켜 먹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피자 사랑은 이어졌다. 강릉, 부산, 전주, 통영 등등. 여행을 가면 지역의 특산물보다 피자집을 먼저 찾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에는 피자와 콜라만으로 충분했는데, 이제는 그 옆에 맥주 한 잔을 놓아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는 점 정도였다. 수없이 많은 피자를 먹었고, 그 가운데서도 몇몇 피자는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군 복무 시절, 미군부대에는 앤써니 피자가 있었다. 군대 선임을 따라 처음으로 간 그곳에서 치즈피자를 추천받아 주문했고, 처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기억은 잊지 못한다.
미군부대 피자의 맛은 단순했다. 짜다. 그냥 짜다. 완전히 짜다. 그렇다고 소금을 그대로 씹은 듯한 짠맛도, 간을 잘못 맞춘 찌개나 쫄아든 라면 국물의 짜가움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맛있게 짠 맛‘이었다.
겉모습은 우리가 평소 먹는 치즈피자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맛은 너무나도 달랐다. 갓 구워 나온 피자 한 조각을 들어 올려 한 입 베어 물면, 치즈가 살짝 늘어나다 끊어지며 입안 가득 짠맛과 고소한 기름진 향이 퍼졌다. 그 짜면서도 고소하게 기름진 맛이 혀와 입천장에 남으면 입 안은 바짝 마르다 못해 텁텁할 지경이 된다. 그 순간 탄산음료를 들이켜면 기름기가 씻겨 내려가며 개운해졌고, 곧 다시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떠올라 또 한 조각을 집게 만들었다. 피자–콜라–피자–콜라, 그 무한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맛이었다.
군생활을 하면서 종종 앤써니 피자의 피자를 먹었고, 그 짠맛은 전역 후에도 한동안 그리운 맛으로 남았다. 한때 초창기 코스트코 피자가 이와 비슷한 짠맛을 주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한국식으로 현지화되면서 짠맛은 점점 희미해졌고, 이후 한국의 어떤 피자집에서도 비슷한 짠맛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또 기억에 남는 피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먹었던 피자다. 피자의 본고장에서 맛본 음식 중 가장 뚜렷하게 떠오르는 건, 재미있게도 냉동피자였다.
여행과 삶이 반반 섞인 여행을 다니던 중에 밀라노에 머물렀던 기간이 있다.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의 주방은 훌륭했으며, 크고 아름다운 오븐까지 갖추고 있었다.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며 주전부리 삼아 맥주와 냉동피자를 함께 담았다. 가격대가 괜찮아 보이는 마트 PB 제품이었고, 부라타치즈는 1.5유로라는 착한 가격에 혹해 샀다. 신선한 루꼴라와 줄기 달린 토마토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한국으로 치면 이마트에서 노브랜드 냉동피자와 치즈, 채소를 사는 셈이었다.
이상 기온으로 더웠던 어느 날 냉동고의 피자가 생각났고, 오븐을 예열하고 냉동실의 피자를 넣었다. 루꼴라를 씻고 부라타치즈를 꺼내며 함께 볼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고르는 사이 피자는 완성됐다. 그 위에 루꼴라를 흩뿌리고 가운데에 부라타치즈를 올렸다. 한국에서 챙겨간 가위로 피자를 여덟 조각 내고,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라타치즈의 고소함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버팔로, 즉 물소의 우유로 만든 치즈였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넘쳐나는 크리미함이 한국에서 먹던 부라타치즈보다 훨씬 농밀한 단맛과 고소함을 선사했다. 산뜻하다기보다 묵직했고, 다 먹고 난 뒤에도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은 우유 본연의 진득한 고소함이 여운처럼 남았다. 살짝 고소한 버터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 루꼴라의 쌉싸래한 향이 더해지자, 평범한 냉동피자가 단숨에 고급스러운 맛으로 변모했다.
밀라노의 유명한 화덕 피자집에서 정통 피자도 맛봤지만, 어느 더웠던 날 집에서 구워 먹었던 그 루꼴라를 흩뿌린 버팔로 부라타 냉동피자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날 저녁 나는 미친 듯이 짠 피자가 먹고 싶었다. 집 근처에서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는 파파존스의 페퍼로니 피자였다. 금요일 이벤트로 페퍼로니를 제외한 다른 피자 몇 종류가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짠 피자가 먹고 싶었고, 그 짜가운 맛에 맥주를 들이켜고 싶었다. 파파존스에서도 페퍼로니 피자만이 그 짠맛을 조금이나마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문한 피자를 받아 들고 집에 도착해서 맥주 캔을 땄다. 오늘만은 다 잊고 싶었다. 짠 피자–맥주–짠 피자–맥주. 그 반복 속에서 잠시 선택의 중압감을 내려놓고 피자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 입을 베어 문 순간, 나는 슬퍼졌으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피자는 생각만큼 짜지 않았고, 페퍼로니에서는 오래된 듯한 산패의 뒷맛이 났다. 입맛이 떨어졌다. TV 속 예능도 시끄럽기만 하고 재미가 없었다. 오늘의 선택은 실패였다. 피자도, 예능도... 혹시 내 암 치료의 선택도 이렇게 실패하면 어떡하지?
어렵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오면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선택을 내릴 힘조차 없었다. 다만 바랐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오고, 아이들을 만나 수업을 하다 보면... 그때는 다시 선택할 힘이 조금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