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집이에요.” 74년생 단독주택을 매입할 때 매도자 분께서 하셨던 말씀이다. 매도자 분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셨다. 우리 사이에 앉아 계셨던 부동산 중개사 분은 이 동네가 개발되던 당시 그 때를 잘 알고 계셨던 분 같았다. “그 때는 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싹 다 논밭이었고 아휴 뭐 다들 그 땐 후딱 집 지어 가지고 방 쪼개 가지고 집 장사들 하느라 정신이들 없었지... 하여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아내와 내가 들어가 살려면 인테리어가 아닌 리모델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가장 먼저 챙겨본 부분이 바로 집을 쪼개서 집으로 만든 방이었다. 같은 집의 방문을 벽으로 막고 출입문을 따로 내어 월세를 줄 수 있게끔 만든 방 한 칸짜리 집, 옛날 문학소설에서 나오는 쪽방이었다. 세입자 분께서 이사를 나가시고 아내와 그 방을 둘러보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작은 방에 생각지 못했던 다락 공간이 있었다. 층고가 꽤나... 2미터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싱크대와 세면대가 함께 나란히 붙어있는 공간이 있었다. 샤워기 앞에 싱크볼이 있었다. 이야... 그 옆에 보일러가 있었다. 방에 들어가려면 높은 돌계단을 두어 계단 올라가야 했다. 이 방, 이 공간을 마주하고 여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를 놓고 아내와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했었다.
“다락은 허물고 싱크대 공간은 단을 높여서 방과 레벨을 맞추고 큰 방 하나로 만드는 걸로 구조를 바꿔봤어요.” 리모델링 대표님께서 도면을 보여 주셨을 때 아내는 눈이 동그래졌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은 눈동자였다. 설계 도면은 계약후에 칠 수 있다고 하셨던 다른 사장님들과는 다르게 계약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고 본인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도면을 펼쳐 놓고 브리핑 해 주는 모습에 아내는 놀란 눈치였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배운 점이 많았다. 보이는 대로 상상하는 것은 쉽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경험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어떤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우리 부부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먼저 짚어주면서 영감을 주는 분과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떤 성향을 가진 건축주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은 철거 이틀째. 현장에 가서 보니 쪽방과 천장을 철거하고 있었다. 쪽방의 다락을 허물고 나니까 “큰 방 하나로 만드는 걸로” 라고 하셨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쪽방이었을 때는 꽤 작아 보였었는데 철거 자재들이 방 한 가득 쌓여 있었음에도 다 털어내고 나서 합쳐진 방은 꽤나 커 보였다. 아내는 눈이 또 동그래졌다. 쪽방을 아내의 작업실로 만들고 싶어 했는데 생각보다 큰 작업실을 갖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요 다락을 처음 보고 나는 아내에게 여기다가 다락방 침실을 만들까? 책상을 여기다 놓고 복층 구조로 내려다 보는 사무실 느낌쓰? 이랬었다.
*내 생각을 막고 있었던 벽이 뚫어지고 있었다.
*벽을 뚫고 나니 안방만큼 큰 방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이 그제서야 나에게도 보였다.
*이 싱크대+샤워 공간과 저 방이 합쳐질 수 있을 거라고 완전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여기는 반지하 공간이다. 옛날 집들은 반지하에도 방이 있다. 우리 집 반지하 구석에는 쌩뚱 맞게도 이런 맨홀 뚜껑이 있었다. 매도자 분께서는 여기에 펌프가 있다고만 말씀 하셨었다. 지하가 하수관보다 낮아서 지하에서 쓰는 물을 여기에 모아가다 펌프로 퍼 올린다고 하셨었다. 리모델링 대표님께서는 여기를 보시고 맨홀 뚜껑을 열어 보셨었다. 아내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다. 꽤나 많은 인테리어 사장님들께서 이 공간을 보고 가셨지만 맨홀 뚜껑을 직접 열어보고 안을 들여다 보면서 여기가 뭔지, 이 물들이 어디로 연결되어 나가는지 보는 분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나도 "집수정" 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