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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y 11. 2023

김유정 생가를 찾아서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다.

문학관 기행을 쓰다 보니 김유정 생가와 문학촌을 방문했던 날을 놓쳤다.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온 지 보름가량 지나서였다. 사실 전부터 가보려고 했던 곳인데, 집에서 그냥 훌쩍 다녀올 만한 거리가 아닌지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 날을 잡았다.   

   

집을 나선 지 두 시간 정도 걸려서 문학촌 입구에 도착했다. 문학촌은 생가와 기념관, 그리고 마당에 있는 조그만 정자와 김유정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을 그린 조각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문학촌을 나와서 길 건너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면 김유정 이야기 집이 따로 있었다.

      



김유정은 1908년에 태어나서 1937년 2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짧은 생애 중에서 소설과 수필을 창작한 시기는 1933년 산골나그네를 필두로 불과 5년여 기간이었고, 그 기간에 30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였고, 그중 10여 편은 김유정이 태어난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유정은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설립했고, 농촌 계몽 활동을 펼치며 창작에 몰두했다. 김유정은 농민들의 생생한 생활언어를 파악하여 소설 속에 등장시켰는데, <동백꽃>의 덩저리, 쌩이질, 감때사납다 등을 비롯하여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안해> 등의 여러 소설에서 떨닙, 보강지, 버덩, 줄대, 괴때기, 깨묵셍이, 희짜뽑다, 조비비다, 훔척훔척하다 등과 같은 많은 우리말을 선보였다. 이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의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33년 결성된 문단 작가 모임인 <구인회>에 유치진, 조용만 대신에 김환태와 함께 가입하여 활동했다. <구인회>는 1930년대 순수문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 단체지만 불과 4년 만에 해체되었고, [시와 소설]이라는 동인지를 펴냈다.    

 



김유정은 소리계에서 유명한 박녹주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유부녀였던 녹주는 유정을 멀리하려 했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지독한 스토커의 기질을 보여주듯이 녹주에게 집착하였다. 거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녹주를 향했던 마음을 결국에는 접은 듯 보였으나 실상은 죽기 전까지도 녹주를 연모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을 한낮 연애소설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의 농촌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해학 속의 비참함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다루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제 논의 벼를 떳떳이 거두지 못하고 몰래 훔쳐 거둬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그려진 <만무방>이나, <소나기>에서처럼 남편의 도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매음을 종용하여 동네 유지에게 보내는 줄거리가 해학적으로 그려지긴 했으나, 그 밑바닥에는 생존을 위해 윤리마저 버려야 했던 당시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던 마음이 깔려 있었다.     




김유정은 1935년 봄, 신춘문예 당선 축하연에서 이상을 처음 만났다. 김유정과 이상은 이후로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지만, 서로 약속이나 한 듯 20여 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생을 마감했다. 문학사의 두 천재는 이렇게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고, 이상이 죽은 후, 5월에 서울 부민관에서 두 사람의 합동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김우정과 이상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한다.   


  



초저녁 술을 좀 먹고 곤해서 한창 자는데, 별안간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시나 가까웠는데.. 하고 눈을 비비고 나가 보니까 유정이 B군과 S군과 작반해와서 이 야단이 아닌가? 유정은 연해 성히 곤지곤지중이다. 나는 일견에 “이키! 이건 곤지곤지구나”하고, 내심 벌써 각오한 바가 있자니까 나가잔다.

“김형! 이 유정이가 오늘 술 좀 먹었습니다. 김형! 우리 또 한잔허십시다.”

“아따, 그러십시다그려.”

이래서 나도 내 벙거지를 쓰고 나섰다. 


    

‣ 이상의 (김유정-소설체로 쓴 김유정론)에서 

‣ 문장 중의 ‘김형’은 이상을 말한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문학촌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그래도 춘천은 닭갈비지”라고 했듯이 김유정역(원래는 ‘신남역’이었다) 앞의 닭갈비 집을 찾아서 간만에 닭갈비 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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