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흔 Apr 26. 2023

만해기념관을 다녀오다

나루ㅅ배와 行人에서 빼앗긴 조국을 보다.

어제는 남한산성에 있는 만해기념관에 다녀왔다. 여기 브런치에서 만난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신 곳이라 잊기 전에 다녀오려고 아내와 같이 집을 나섰다. 지하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조금씩 운전석 창에 떨어진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다. 날이 아주 덥거나 하는 것보다는 돌아다니기 훨씬 좋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몰았다. 


성남 방향에서 산성을 오르다 보니 예전에 그림 그리러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광주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민가에 들러서 그림을 그렸다. 추운 겨울 번개사생이었는지라,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옹기종기 모여서 그렸는데 그래도 화지 위에는 물을 적시자마자 살얼음이 얼었던 날씨였다. 그 기억 이외에 남한산성과 관련한 최근의 기억은 거의 없었으니, 아마도 내가 남한산성에 오른 지가 칠팔 년은 지났으리라. 그 사이에 산성 입구도 많이 정비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착해서 곧바로 기념관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던지라 아무래도 걷기는 번거로울 듯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고 들어갔는데, 가다 보니 도로공사하는 사람들이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내려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갔는데, 어차피 그렇게 했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기념관에는 주차장이 없었다. 


도착해 보니 기념관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인 것 같았다. 아담한 건물의 한 층으로 이루어졌고, 그나마 절반 정도의 공간은 만해의 영정과 서예(친필 서예 작품과 만해의 시를 다른 서예가가 쓴 것)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보다는 만해 개인의 자료라기보다 그 시대의 다른 문인들과 관련된 자료(시집, 문집 등)까지 전시된 까닭에 오롯이 만해의 자료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가장 마지막에 전시된 작품이 내 발을 잡았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서 보니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나루ㅅ배와 행인'이라는 시를 2쪽 병풍처럼 표구한 전시물이다. 그렇게 서서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아마 문학관이나 기념관을 찾는 이유가 이런 것에 있을 것이다. 출간된 서적에서 접하는 느낌과 실제 전시물 형태로 접하는 느낌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매번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번 옮겨보겠다. 






나루ㅅ배와 行人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나를 짓밟읍니다.

나는 당신을 안ㅅ고 물을 건너감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흐나 엿흐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감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낫가지

당신을 기다리고 잇슴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도러보지도안코 가심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지 오실줄만은 아러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감니다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



참고: 일부 현재의 맞춤법에 어긋나는 부분도 원문 그대로 적었다.






사실 만해의 시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작품은 '님의 침묵'이다.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그 슬픔을 묵묵히 견디면서도 언젠가는 돌아올 해방된 조국을 그리워하는 심경을 글로 쓴 작품이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에서처럼 연인만 님이 아니라 식민지하에서 방황하는 민족이 님일 수도 있고, 빼앗긴 조국의 모습이 님일 수도 있다는 다중적 의미를 한 단어에 포함시킨 것처럼, 나는 위의 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혹자는 나룻배와 행인이라는 시 안에 불교적 세계관을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 나룻배가 희생과 침묵으로 행인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자기의 것을 남에게 주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탐욕을 이겨내고 사랑을 실천하는 보시의 불교적 윤리의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즉, 시에서는 나룻배로 형상화된 화자인 내가 흙발로 짓밟혀도 원망하지 않고 임이 오실 때만을 기다리다가 임을 안아서 물을 건너고 떠나보내는 헌신적 사랑을 보여준다. 나를 상징하는 나룻배와 당신을 의미하는 행인의 관계에서 희생과 믿음을 통한 사랑의 실현을 노래하고 있다. 會者定離다.


하지만 여타의 다른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만해는 이 시에서도 역시 조국을 잊지 않고 있다. 行人은 조국이고, 나는 조국을 보내고 또다시 기다리는 이별과 고통 속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와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이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당신은 나를 짓밟읍니다"에서는 조국이 나를 짓밟았다는 표현은 말이 안 되는 표현이므로, 그냥 흙 묻은(고난을 겪은) 당신의 발(조국)을 내가 말없이 감싸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시를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아마도 3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나는 2연에서 오히려 눈이 더 오래 머물렀다. 왜 이렇게 당하고만 사는 민족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울컥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해는 이 시를 통하여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아러요"에서 보여주듯이, 잃어버린 조국을 언젠가는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시를 읽는 모든 민족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영정의 모습은 내 생각보다 자상하거나 유순한 모습이 아닌, 강하고 굳센 모습이었다.






만해기념관을 뒤로하고 내려와서 음식점이 있는 거리를 잠시 걸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날씨라서 행인들은 별로 없었다. 아내와 나는 길을 걷다가 어느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곳에 왔으면 도토리묵무침과 전을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문하니 생각보다 번개같이 빠르게 음식이 나왔다. 안타까운 것은 그 좋은 안주거리를 눈앞에 두고서도 막걸리 한잔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집에 갈 때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므로 그냥 참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은 올라온 길과는 반대 방향인 광주시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퇴근해서 집에서 기다릴 딸에게 줄 빵을 사려고 대충 인터넷에서 검색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 들리기 위해서다. 카페에 들러서 빵을 사고 집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