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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견 Jan 08. 2024

툴레협회

나치의 오컬트적 기원

"매서운 밤이면 나는 때로
고요한 숲 속 보탄(Wotan)의 떡갈나무에 가서
어둠의 힘과 하나가 된다.
달빛의 마법은 룬 문자를 만들어 낸다
낮에 일광욕을 하던 자들이여
주술앞에 초라해지리라

그들의 광명의 칼은 휘두리기도 전에 석순으로 굳어질 것이요
거짓은 진실로부터 떼내어 지리라.
나의 말은 둥지로 향할 것이며
선량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이 권세로 축복과 번영을 선사할 것이다.




이것은 히틀러가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 참호 속에서 쓴 시라고 합니다.


히틀러는 연락병으로 철십자훈장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복무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적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실명을 하게됩니다. 후방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그는 독일이 패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암흑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의 귀에 환청이 들려옵니다. 초자연적 환영을 겪은 것이죠.


"독일을 구하라."


그와 동시에 기적적으로 그의 눈이 틔입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메시아적 사명에 대해 각성하게 됩니다.

'불온한 동맹'이란 책의 작가 피터 라벤더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수 년 앞서 '귀도 폰 리스트'가 일시적 실명 상태에서 겪었던 영적 체험, 혹은 사도 바울이 눈먼 채, 다마스쿠스로 향한 것과 같은, 그런 경험이었으며 바로 그 시점부터 히틀러는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다.”


한편, 독일 바이에른 지역 뮌헨에서는 한 무리의 남성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이름은 '툴레협회'.


아리아인 전설에 의하면 고대 북극 땅엔 '하이퍼보레아(Hyperborea)'라는 현생 민족들의 시원 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툴레회는 이 중 아리아인들의 땅이였다고 일컫는 울티마 툴레(Ultima Thule)에서 이름을 차용해 온 것입니다.


이 이론은 '귀도 폰 리스트'라는 신지학 오컬티스트에 의해 독일에 알려졌습니다. 그는 시토수도회의 수사였던 제자, '요르크 란츠 폰 리벤펠스'와 함께 '아리오소피'란 종교를 창시합니다. 그는 원래 카톨릭 신자였다가 오컬트에 입문 후 보탄(Wotan)이란 아리아 신을 섬기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룬 문자에 대한 해독으로 오컬트계에서 유명해집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신 템플기사단'을 창시했는데, 이 기사단의 로고가 바로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다른 말로 스와스티카입니다. 사실, 이 하이퍼보레아 설은 신지학회의 대모 '헬레나 블라바스키'가 먼저 주창한 이론입니다. 스와스티카 역시 신지학회 로고에서 차용해 온 것이죠.


그들의 교리는 신지학과 마찬가지로 유대 밀교인 카발라와 영지주의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은 반유대주의를 표방했지만 그들 조직엔 유대인 랍비도 두 명이나 있었습니다. 나치즘의 모태가 되는 '아리오소피'는 카톨릭 수사 리벤펠스가 만들고, 유대인 철학자 '오토 바이닝거'와, 프리메이슨 '헬레나 블라바스키'의 사상을 계승한 것입니다.


이 기사단의 추종자 중에는 바이에른 지역에 귀족이자 프리메이슨인 '루돌프 폰 세보텐도르프'가 있었는데, 그가 '게르만 기사단'의 뮌헨 지부로서 '툴레회'를 창단한 사람입니다.


툴레회는 단순한 정치토론 모임이 아니였습니다. 툴레회의 초기 이름은 '죽음의 형제들' 이였습니다. 프리메이슨이나 신지학회가 그렇듯 신비주의 비밀결사 교단이였습니다.


여기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있었는 그는 사실 독심술, 대중심리조작, 선동술, 흑마술 등을 하는 오컬티스트였습니다. 그는 독일 부흥시킬 위대한 메시아가 나타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훗날 히틀러를 만나자 그의 기술들은 고스란히 전수하여 히틀러를 세기적 인물로 만듭니다.


이렇듯 당시 독일은 민중에선 '볼키쉬운동'이라 불리는 범 게르만 민족주의 운동과 엘리트 계층에선 신비주의 비밀결사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청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거리 화가 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시간이 나면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거나 고서점 거리를 찾아가 민족주의, 오컬트 서적들을 탐독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은 반계몽주의 사조로 낭만주의와 반유대주의, 민족주의가 풍미하던 때 였습니다. 이 때 히틀러의 이목을 끈 잡지가 있었는데,

바로 신 템플기사단의 리벤펠스가 출간하는 '오스타라'라는 잡지였습니다. 아리안인 우월주의와 고등인종 개량론을 내세운 극단적 우생학 잡지였죠.


히틀러는 서점가를 뒤져 이 잡지를 모두 찾아 봅니다. 이 때 브레슈란 한 오컬트 서점 주인과 사귀게 되는데 그는 히틀러에게 점성술, 연금술, 마법 등 신비주의 지식을 소개해 줍니다. 특히 '페요테'란 남미 마약을 소개하는데 이 약물은 제3의 눈을 열어 영적 각성을 깨운다고 알려진 약물입니다.


당시 독일은 마약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제약산업은 발전하는데 임상에 따른 부작용 보고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각종 마약성 진통제, 각성제가 처방됐고 민간 뿐만 아니라, 군대에도 상비약으로 지급됐습니다. 훗날 히틀러도 각종 마약성 각성제에 중독되어 갔으며, 그의 특유의 신들린 듯한 연설은 마약성 각성제에 의한 트랜스 상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히틀러는 뮌헨으로 돌아옵니다. 당시 바이에른은 소련식 볼세비키주의자들이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고, 툴레회와 같은 민족주의 우익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하고 처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좌익정부의 군인 신분을 유지하였고 한 우익정당을 정탐하라는 임무를 맏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훗날 나치당이 되는 독일노동자당입니다. 툴레회가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확장시키려고 만든 대중 정당이였죠.


여기에서 히틀러는 갑자기 토론에 끼어들어 자신의 임무도 망각한 채 신들린 듯 연설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이 중엔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있었습니다. 그의 눈엔 히틀러가 자신들이 그렇게 열망하던 아리아인 메시아가 현신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치즘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아리오소피의 창시자 '귀도 폰 리스트'가 죽은 지 한 달이 지날 무렵의 일입니다.


이 순간 이후로 '에카르트'는 죽는 날까지 히틀러의 정신적 아버지로써 살게됩니다. 그는 나치의 산파가 되어 '뮌헨폭동'을 지켜본 후에 사망합니다.


히틀러는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에, 나치즘의 공동창시자 '디트리히 에카르트'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글을 남겼습니다.


유튜브 연재 <나치의 기원>

1. '나치의 기원'은 연재물로서, 현재까지 반복되는 '반유대주의'의 출처를 알아보는 다큐물입니다.

2.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나, 잘못 인용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제작자는 반유대주의와 인종혐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4. 나치는 그릇된 이념으로 무고한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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