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6월 24일. 반유대주의 민병대인 '오가니제이션 콘술(Organisation Consul)'의 대원 3명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외무장관이였던 '발터 라테나우(Walter Rathenau)'를 암살합니다. 도주한 범인 중 2명은 자살을 하고, 남은 한 명이 검거되는데 그는, 라테나우가 '시온의 의정서'에 서명한 유대 장로 중 하나였기에 죽였다라고 말합니다.
발터 라테나우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대기업 회장이자 백만장자 정치인이였습니다. 그는 1909년, Neue Freie Presse라는 신문 컬럼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게재했습니다.
"서로 내통하는 300인이 대륙의 운명을 좌우하며, 자신들 사이에서 후계자를 결정한다."
그는 이 엘리트 조직에 자신 속해있다거나, 그들을 유대인들이라 지목한 것이 아닙니다. 이 컬럼의 전체 취지는 글로벌 산업계엔 이런 과두적 시스템이 있고, 앞으로 독일 산업을 부흥시키려면 이런 점을 고려 해야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독일의 볼키쉬운동가들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1912년 테오도르 프리치(Theodor Fritsch)라는 극우 언론인은 라테아누의 발언을 두고, "유대 패권에 대한 명백한 공개 고백"이며, 그가 "독일의 그림자 카이저"라고 선동을 합니다. 이 선동은 당시 러시아에서 유입된 '시온의 의정서'와 겹치면서 독일반유대주의자들의 표적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라테나우는 살해되기 1년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 300인의 조직이란 유대인이 아니라 글로벌 리더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명을 했습니다.
반유대주의자들의 말과 달리, 그는 자신이 독일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1차 세계대전 때도 병참을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유대계 독일인들은 자진해서 입대했으며 조국을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당시 패전의 상실감과 전쟁 배상금 문제로 피폐해진 독일국민들은 울분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라테나우가 죽기 얼마 전에도 콩피에뉴 종전협상에 서명한 전 재무장관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를 암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라테나우는 죽기 직전 외무장관으로서 소비에트 러시아와 '라팔로 조약'을 맺고 돌아왔는데, 극우세력들은 이것을 유대인이 주동된 볼셰비키당과 유대인 장관이 내통하는 것이고, 독일에 공산혁명을 수입하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사실 이 조약은 패전 후 고립무원이된 독일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 재건을 도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독일 전역에 거대한 추모 행렬을 불러왔고, 반유대주의 갈등은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프랑스 및 연합국 국가들은 미국에 빚진 전쟁자금 차관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이는 독일에 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받아내야 했습니다. 당시 국제사회는 금본위제 화폐를 통용했는데 전후 독일의 금보유고는 바닥이였습니다. 그러자 프랑스는 1923년 기습적으로 독일 루르 지역을 점령하고 배상금을 독촉합니다.
점령군은 독일제국은행에 들이닥쳐 남은 금을 싸그리 긁어 갔으며, 화폐까지 직접 찍어서 가져갔습니다. 이 사건 이후 독일 정부는 배상금을 갚겠다며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데 이게 그 유명한 전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사태에 원인이 됩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 빵 한 조각을 사려면 지폐 한 수레를 싣고 왔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치욕적인 상황을 독일 국민들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중엔 히틀러와 나치당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뮌헨 폭동'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이 때 독일을 구원한 것은 히틀러가 아니였습니다. 이 사람은 은막에서 세계사를 뒤바꾼 천재 금융가였습니다. 바로 독일제국은행 총재, '얄마르 샤흐트', 그는 이 초인플레이션을 타계할 아이디어를 내는데 바로 금본위제를 끊어버리는 것이였습니다. 그는 땅본위제를 기초한 렌텐마르크를 출시합니다. 즉 땅을 담보로 한 화폐를 고안한 것이죠. 그러자 초인플레이션은 그 즉시 마법처럼 사라집니다. 이 일련의 일들이 모두 1923년 한 해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미국은 바로 전후배상금 문제에 개입하게 됩니다. 도스 플랜이란 계획이죠.
"독일의 전쟁배상금을 탕감해주고 경제 재건을 위해 차관을 제공하겠다." 이 지원에 전제조건은 금본위 화폐로 돌아올 것. 그렇게 화폐개혁을 한지 1년 만에 다시 '라이히스마르크'라는 금본위 화폐를 사용합니다. 또한 독일제국은행의 지분의 절반을 가져가며, 독일의 공영기업들을 채무이행의 담보로 잡습니다. 미국은 그 즉시 엄청난 차관을 독일 쏟아붓습니다. 이 플랜에 발벗고 나선 것이 J.P모건과 록펠러였죠.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미국이 차관을 독일에 대출해 주면, 독일은 다시 그 차관을 담보로 화폐를 찍어 프랑스와 연합국에 배상금으로 주고, 유럽의 연합국들은 다시 미국에 전쟁 때 빌린 차관을 갚습니다. 미국은 자기 돈을 주고 자기 돈을 다시 회수하면서 이자가 붙은 채 금방석에 앉는 형국이였습니다. 이런 거품 경제는 미국의 '광란의 20년대'를 만듭니다. 돈이 넘쳐 흐르는 시대였던 거죠.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1924년~1929년까지 바히마르 공화국 전례 없는 경제활황을 누리면서 지지를 받게됩니다.
이 때, 감옥에서 막 출소한 유명인사가 있었는데 그는 '나의 투쟁'이란 책으로 돌아온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그는 뮌헨폭동으로 9개월의 형을 살고 애국자 소리를 들으며 출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독일은 천지개벽을 했습니다. 상황 판단에 어두웠는지 나치당은 곧이은 선거에서 기대와 달리 저조한 성적을 거둡니다. 점차 한때 독일을 뜨겁게 달구었던 볼키쉬운동의 퇴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치당은 축소됐습니다. 그 때 미국에서 세계사를 뒤흔드는 사건이 터지는데 바로 '1929 대공황 사태'입니다.
미국 주식시장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하루아침에 대 폭락을 거듭하자, 전세계 금융시장은 경색됐고 전 세계로 공황이 퍼져나갔습니다. 달러는 급히 회수됐고 독일에서 외화는 썰물 빠지듯 사라졌습니다. 미국 달러는 미 FRB의 금보유를 기초란 것인데, 달러가 빠져나가자 달러에 기댄 라이히스마르크는 다시 금태환이 불가능한 종잇조각으로 전락했습니다. 금융 거품으로 현실을 망각했던 독일인들은 이 사태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고 그들 눈에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란 책이 들어옵니다.
"모든 문제는 원인은 국제 유대자본이다." 히틀러의 말은 다시 생명력을 얻었고, 그는 순식간에 다시 게르만의 예언자로 등극했습니다. 뒤 이은 총선에서 나치당은 드디어 원내다수당이 되었고, 히틀러는 드디어 총리로 취임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자 마자, 즉시 '렌텐마르크의 기적'을 보여준 '얄마르 샤흐트'를 독일제국 총재 겸 경제장관으로 임명합니다.
샤흐트는 렌텐마르크 때와 같이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마법을 선보이는데, 바로 관제어용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서 국채를 찍어내는 권한을 준 것입니다. 이 채권을 독일제국은행이 보증을 선다라는 구조죠. 이것을 메포어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정부가 채권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니, 국가부채가 늘지 않고, 화폐도 아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란 논리입니다. 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기급 정책은 또 한번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이 돈으로 독일은 아우토반과 같은 공공사업을 벌입니다. 공공일자리가 늘자 실업율은 줄고, 수출도 늘어나게 됩니다. 결국 독일은 군비를 올려 재무장을 합니다. 불과 4년 만에 독일은 대공항 여파를 가장 빨리 탈출하며 유럽의 강국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말이 말이 맞았다!" 이 기적을 겪은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퓨러'라고 부르며 신격화 하기 시작합니다. 툴레회가 염원하던 진짜 아리아인의 구세주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물에 기반하지 않은 채권이 늘인데다가 군비가 늘자, 독일 재정은 부채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샤흐트는 곧 재정이 바닥나니 군비를 줄이라고 충고하지만 히틀러는 그를 해임시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병합을 시작으로 주변국을 침공하면서 점령국의 재원으로 메포어음을 갚아나가기 시작합니다. 훗날 샤흐트는 전쟁이 아니어도 채권을 갚을 수 있다며 전쟁을 반대 하다가 결국 히틀러 암살사건의 연루자로 지목되어 수감됩니다.
한편, 1931년 영국을 필두로 유럽국가들이 차례대로 금본위제를 탈퇴하자, 1933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긴급은행권을 발동해 FRB에게 화폐발행권을 위임하고 금태환 포기를 선언합니다. 이렇게 대공황의 여파가 진정될 무렵 영국은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후 금본위제를 포기한 영국 파운드화는 국제 기축통화 지위를 상실하고,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의 금을 미 본토로 긁어모은 미국은 다시 달러 금본위제를 부활시킵니다. 단, 미국 달러 외에 다른 나라들은 모두 달러에 환율을 고정시키죠. 달러 기축통화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 황금족쇄의 비밀이 풀리자 금융위기 때마다 세계를 구한 J.P모건과 로스차일드 가문은 역사 전면에서 사라지고 전후 세계은행, IMF, UN이 그들 가문을 대신하게 됩니다.
한편, 1969년 영국 MI6의 첩보요원 존 콜먼은 대영박물관에서 충격적인 기밀 문서를 발견하고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내용을 책으로 내는데 이것이 현대 음모론의 바이블인 '300인 위원회'란 책입니다.
이 위원회는 영국 동인도회사와 관련된 이들이 1727년에 만든 비밀 회의체로 '300인의 올림피언'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세계의 역사 행방을 결정한다라는 내용이죠. '발터 라테나우'의 발언과 같습니다. 존 콜먼은 이들을 공화파 계몽주의자들의 후예, 즉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이라고 밝힙니다.
발터 라테나우가 죽은지 4일 뒤, 라테나우의 어머니는 살해범 '에른스트 베르너 테호브'의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씁니다.
"당신 아들이 암살한 제 아들의 이름과 영혼을 걸고 말합니다. 만일 당신의 아들이 지상의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이어 하늘의 재판관 앞에서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당신 아들을 용서합니다. 이 말을 아들에게 전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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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영상은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2. 제작자는 나치를 미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지 않습니다. 3. 제작자는 인종차별 및 인종혐오에 동의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