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만과 H.G 웰스
1921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워싱턴에선, 전쟁에 승전한 9개국이 모여 군비축소 및 전후 세계질서를 의논하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때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를 대표해 이승만이 회담장에 와있었는데 기대와는 다르게 회의 사무국은 대표단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들의 의견마저 묵살했다. 승전국 중엔 일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승만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엔 영국의 유명 언론인 H.G 웰스가 있었다.
웰스는 이승만의 말을 경청한 후 국제정세에 대해 자신의 의견도 피력했는데, 인상적인 것은 인류가 자멸하지 않기 위해선 세계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열렬하게 토로했다는 것이다.
2. 웰스와 허슬리 가문, 조지 오웰.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그는 언론인 보다 소설가로 더 유명했는데, 많은 작품들이 현재까지 영화화되고 있다. 먼저 1895년에 시간여행을 다룬 '타임머신'을 시작으로, 인간 DNA조작을 다룬 모로박사의 섬,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 무려 100여 편의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그 당시에 발명 되거나, 발표되지 않는 과학이론 및 발명품들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였다. 그의 스승은 찰스 다윈의 동지였던 '토마스 헉슬리'. 다윈의 진화론은 유신론시대와 유물론시대를 구분하는 분기점 같은 역할을 했다. 또한 맬서스의 '인구론'과 함께 유럽의 사상과 철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데, 나치의 우생학, 맑스의 유물론이 모두 이 진화론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상들이다. 특히 다윈의 사촌이였던 '프랜시스 골턴'은 '우생학'이란 단어를 고안한 사람이며, 골턴과 헉슬리는 다윈의 최측근으로 다방면에서 다윈 사단의 사도 역할을 했다.
훗날 토마스 헉슬리에겐 유명한 세 명의 손자가 나오는데, 초대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된, 줄리안 헉슬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앤드루 헉슬리, 그리고 소설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 3형제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모두, 웰스와 똑같은 세계 정부론을 다양한 방법으로 설파를 했다는 것이다.
그 중 줄리안은 유네스크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유네스코 철학은 진화론이 그 중심이며, 세계단일정부 수립에 대한 바탕이 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반면, 올더스의 대표작 <멋진 신세계>를 보면, 세계단일정부 하에 인류는 인큐베이터에서 인공 출산되며, 우생학적 계급에 의해 통제된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인데... 놀라운 것은 올더스는 '조지 오웰'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였다.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약물을 통한 인간통제를 그려놨는데, 실제로도 그는 마약중독자였다. 페요테 선인장에서 추출한 메스칼린과 그와 가장 비슷한 LSD란 약물을 애용했는데, 페요테는 히틀러도 사용한 마약이다.
이 약물은 마약중에서도 환각이 주요 효능이였는데 독특하게도 외계, 신과의 접촉을 유도할 수 있다고 한다. 환각버섯, 아야와스카 역시 그런 종류의 것이고, 현대에 가장 유명한 것이 DMT라는 물질이다. 뇌의 송과선에서 자연분비되는데 이를테면 죽기 전에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란 것이 이 DMT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줄리안의 유언은 "LSD 100마이크로그램, 근육 내 주사" 였다고 한다.
웰스는 1928년에 <공공연한 음모>(The Open Conspiracy)란 책을 내는데, 그는 책에서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밀어부치기 위한 계획이라고 밝힌다. 책은 핵무기의 개발, 생물학 무기, 인구 통제, 교육을 통한 사상 통제, 사유 재산과 화폐의 폐지, 세계단일정부 등의 내용이 실려있다.
여기에서 이 핵무기, 즉 원자폭탄은 1914년에 쓴 그의 소설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에 이미 등장하는데, 실제 원자폭탄이 개발되기 30여 년 전에 쓴 것이다. 단순히 폭팔력이 엄청난 핵무기가 나올 것이다 정도가 아니라, 원자핵 분열 시의 연쇄반응으로 터지는 폭탄이라고 정확히 설명한다. 그 때까지 어떤 물리학자도 그런 생각을 한 적도, 관련 이론을 발표한 적도 없었다.
독일의 유대인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는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런던으로 망명한다. 당시 물리학회 주류는 핵 에너지의 실용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였다. 핵물리학의 아버지 어니스트 러더퍼드도 그러한 의견을 타임지에 실은 바가 있다. 그러나 실라르드는 달랐다.
그는 웰스의 핵분열이란 아이디어를 이론화하고 36년에 특허를 낸다. 결국 39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엔리코 페르미'와 우라늄 연쇄반응 실험에 성공한다.
그는 즉각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핵무기가 곧 개발될 것이고, 나치보다 서둘러야 한다고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미 정부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자신과 같이 망명해 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찾아간다. 그는 미국에서 스타급 대접을 받고 있던 유명인이였다. 그의 명성이면 미 정부에서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핵 붕괴 에너지의 총량이 크다는 건 알지만 붕괴 속도가 너무 느려요. 폭탄이 될 수 없습니다. 러더퍼드도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러자 '실라르드'는 '페르미'와 함께 실험으로 증명한 핵분열 연쇄반응에 대해 설명해 줬다.
3.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여기서 우리는 아인슈타인에 대해 알아야 사실이 좀 있다. 그는 33년 망명하기 전부터 이미 로스차일드와 H.G 웰스, 조지 버나드쇼 등과 만나 교류했고, 사회주의자 겸 시오니스트였다. 독일 내 재벌 발터 라테나우와도 그 때 교류한 것이였다. 유대 사회에선 아인슈타인 같은 스타를 확실히 밀어서 반 나치의 심볼로 만들어야 했다.
그는 생각 외로 머리가 좋지 않아 대학 졸업도, 수학자였던 아내의 도움으로 간신히 할 정도였다.
친구 아버지에게 한 부정 청탁으로 특허청에 들어가게 됐는데, 자신이 담당하던 특허들을 보고 '광전효과'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낸 기적의 이론들이라는 것은 대부분 선행 발표자가 있던 것이었다. 약간의 추가점이 있어서 문제 삼지 않은 것 뿐이였다. 그러나 그는 16년 뒤 이 논문들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 길로 그는 이혼을 하고, 직장을 그만 둔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많은 독일계 유대인들과 달리 늘 전쟁을 피해 도망다녔는데, 이것이 미국 망명 이후 반전 평화주의자로 꾸며졌다. 반면, 그는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와 언변을 가져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당연히 언론들도 그를 좋아했다. 반전을 외치는 천재 과학자! 나치에 맞서는 시오니스트! 그는 훗날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말년은 소련의 KGB 여성 스파이에게 빠져서, 10년이나 정보를 털린 요주의 인물일 뿐이였다. 이혼한 첫 아내의 아들은 평생 그를 원망하고 임종 때도 찾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 때 아인슈타인은 편지에 서명을 했다. 결국 맨하튼 프로젝트를 발족시킨 아인슈타인의 편지란, 아인슈타인은 단지 서명만 했을 뿐 실상 실라르드의 편지였던 것이다. 실제로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일한 것도 실라르드였다.
4. 맨하튼 프로젝트
그렇게 뉴멕시코 주의 황량한 벌판 로스앨러모스에는 세기적 과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약 100여명의 이론 과학자와 13만의 연구인력, 약 40조 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였다. 연구소의 수장인 '오펜하이머'부터 핵심 과학자 중 3분의 2가 유대인들이였다. 그들은 42년에 착수해서 불과 3년 만에 트리니티 섬에 폭탄을 떨어트린다. 그 광경을 지켜본 과학자들의 반응은 아연실색이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150명 과학자들이 실사용 반대에 서명을 했고, 미국의 육군 및 해군 5성 장군 중 8명 중 7명이 민간인에 대한 핵폭탄의 사용의 일본군 전열을 파괴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동의하였다. 더 나아가 군사적으로도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비난 받게될 것이라고 했다.
당시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 보아도 일본군은 이미 소련군의 참전으로 관동군이 궤멸되었고, 소련에 의해 공산화가 되느니, 하루빨리 미국에게 항복하자라고 내부적 중론이 모아지고 있었다. 본토옥쇄작전으로 인한 전쟁지연은 불가능한 상황이였다. 문제는 천황제 보존인가 아닌가의 선택일 따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민간인 핵폭격을 강행했다. 그렇게 나가사키에서 7만, 히로시마에서 14만이 사망했다. 그 중 한국인의 피해도 컸는데 4만 명이 즉시 사망하고, 3만명이 생존했으나 피폭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이 중엔 조선의 왕손인 이우 왕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전후 연구결과에 의하면 실라르드의 명분이였던 나치는 패망 시까지 핵폭탄을 개발하지 않았다. 원자로 프로젝트는 진행했으나 폭탄으로 개발하는 연구로까진 가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나치가 주력한 것은 V2와 같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이였다. 종전 후 이들을 포함,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이란 이름으로 미국으로 데려간 나치 과학자의 수는 642명이다.
반면 실라르드는 맨하튼 프로젝트가 해산된 후, 코발트 폭탄을 개발하자며, 코발트 510톤을 담은 폭탄이면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그 후, 수소폭탄이 개발되고, 이 수소폭탄에 코발트를 바른 폭탄 10기 정도면 실제로 인류가 방사능에 의해 전멸할 수 있다고 짐작된다.
5. 페이비언 협회와 300위원회
한편, 1940년 웰스는 새로운 책을 낸다. 신세계질서(The New World Order).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내용이다. 그는 이책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NWO를 싫어해서 그것에 저항하며 죽어갈 것이다.”
웰스와 헉슬리 가문의 공통점은 다윈의 이념을 계승하는 진화론적 우생학 신봉자이자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1969년 줄리안 헉슬리는 진화론 100주념 기념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인류는 신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만 년 전, 한 양서류가 뭍에서 살기 위해 모험을 감행했듯이, 오늘날의 인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란 신성불가침 영역에서 벗어나, 그 아래서 피안을 삼는 모든 나약한 생각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든 조직이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인데, 이 조직엔 조지 버나드쇼, 버트란트 러셀과 같은 지식인과 프리메이슨이자 신지학자인 애니 베전트가 있었다. 최근 인물로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있다.
이렇듯 이 New World Order는 다윈의 진화론적 우생학과 맬서스의 인구론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것이라서, 필수불가피 하게 엘리트통제와 인구감축,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상이 깔려있게 된다. 현재에 이르러 '다보스 포럼'의 아젠다인 '그레이트 리셋'까지 지금껏 이들의 열망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MI6 요원, 존 콜먼은 이들을 300인 위원회라고 지칭하고, 이들의 당주를 영국인 에드와드 불워 릿튼(Edward Bulwer-Lytton)으로 지목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소설 쓰는 한가한 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리스 왕으로 추대된 적이 있는 식민지 총독 출신이다.
그가 1871년에 발표한 <브릴: 미래 인종의 권능(Vril: The Power of the Coming Race)>은 아리안족 우생학에 기원이 되는 작품이다. 즉 '발터 라테나우'가 말하는 비 유대계 300명의 글로벌리스트란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소환한 디스토피아가 나치 독일에 의해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뉴월드오더란 표현을 최초로 쓴 것은 조지 부시가 아니라 히틀러였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나치의 아기공장인 레벤스보른으로 구현됐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나치의 기원을 알지못하면 언제든지 전체주의 디스토피아는 우리에게 재현된다.
성평등은 인공자궁을 개발케 하였고, 인공 모유를 만들었다.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전통적 가정이 파괴되는 대신, 정부가 그 보육과 교육을 대신한다. 기본소득으로 사유재산을 가질 필요를 없게 만들고 현금을 없앤다. 대체육, 가공식품 농축산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은 감축한다.
'조지 오웰'은 그들 비밀결사조직의 목격자였던 것이다.
이 번 화는 H.G 웰스를 중심으로 영국 페이비언 협회와 New World Order를 추구하는 이들의 배경을 알아보았습니다. 결국 나치 사상의 뿌리는 '300인 위원회'와 '다위니즘'과 연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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