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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수의견 Jan 05. 2024

배후중상설

유대인과 공산당이 등에 칼을 꽂다.

1919년 2월 21일, 독일의 한 귀족 장교가 이제 막 출발한 신생 인민공화국의 총리를 암살합니다. 그는 암살에 성공하지만 그 역시 총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안톤 아르코 밸리.


그는 재판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커트 아이스너는 볼셰비키주의 유대인이다. 그는 자신을 독일인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아이스너는 애국자들에 죽음을 헛되게 만들었다. 그는 반역자다."


안톤은 커트 아이스너가 유대인이라고 비난했으나, 정작 그 자신도 명문가 유대인 집안 출신이였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한 독일계 유대인은, 일반 독일인보다 그 비율이 오히려 높았습니다. 그는 독일 프리메이슨의 한 분파인, 툴레회에 가입을 원했으나, 유대인이란 이유로 입회가 거부되었고, 자신의 애국심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볼쉐비키 유대인인 아이스너를 살해한 것이라고 진술하였습니다.


죽은 커트 아이스너는 독일 제국을 끝장 낸 주동자 중 하나 였습니다. 커트 아이스너는 킬 군항에서 독일 해병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즉각 바이에른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바이에른 공국을 전복 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당시 독일은 종전 협상 중이였는데,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독일에게 한 가지 이상한 요구조건을 내겁니다.


"협상은 공화국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


1차 세계대전 말기 전쟁은 교착상태였으나, 자국의 영토까지 전선이 밀리지 않은 독일 국민들은 전쟁에서 승리 중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방인 킬 항구에서 일단의 해병들이 명령 거부를 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이와 동시에 전국의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며 봉기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제국으로, 황제 빌헬름2세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제후국이였던 바이에른왕국이 커트 아이스너에 의해 무너지자, 혁명은 전 독일 제국으로 퍼지고, 독일 총리는 황제를 압박해 폐위를 선언하게 만듭니다.

황제가 네덜란드로 쫓겨가자, 총리는 사회민주당 당수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게 되는데, 이것이 독일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바이마르 공화국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신임 총리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취임하자 마자, 즉시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프랑스 전선에 나가있던 독일 육군은 느닷없는 패전 소식으로 영문도 모른채 귀국하게 됩니다. 이 중, 바이에른 공국군 패잔병 무리엔, 상등병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습니다. 청년 장교 '안톤 아르코 밸리'도 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전장에서 돌아오자 자신의 고향인 바이에른이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된 것에 대해 분개했습니다. 그는 황제가 폐위된 일도, 독일이 패전한 것도 모두 커트 아이스너와 유대인 볼셰비키 지지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안톤의 말대로 총리 아이스너를 비롯해 바이에른 주 정부의 각료들은 대부분이 유대인이였고 바이에른 출신도 아니였습니다.


안톤을 수사한 검사는 "독일 청년 전체가 이처럼 불타는 열정으로 가득 찬다면 조국엔 희망이 있을 것" 이라며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안톤은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되다가 1925년 석방 됩니다. 안톤은 란츠베르크 교도소 70번 감방에서 5년의 형기를 채웠습니다. 그가 떠나자 이 감방에 새로 수감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한편, '커트 아이스너가 죽자, 바이에른 사민당 정부는 해체되고 더 급진적인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섭니다. 러시아 볼셰비키 연방의 위성정부가 들어선 것이죠. 독일정부인 바이마르 공화국은 정규군과 민병대인 '자유군단'을 투입하여 치열한 시가전을 치루며 바이에른을 회복시킵니다. 이 시기 독일 전역에서는 공산혁명인 '스파르타쿠스 봉기'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내전상태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기에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또 하나의 폭동이 일어납니다. 바로 히틀러와 나치당이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 것이죠. 이들은 생각외로 쉽게 진압되었고 '아돌프 히틀러'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오히려 히틀러의 명성을 전국에 알리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는 바이에른 주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아이스너의 유대인 정부와 소비에트 정부를 증언하며 나치즘의 시작을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그렇게 안톤이 쓰던 70번 감방에서 히틀러는 드디어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 '나의 투쟁'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주의)

1. '나치의 기원'은 연재물로서, 현재까지 반복되는 '반유대주의'의 출처를 알아보는 다큐입니다.  

2.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나, 잘못 인용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3. 제작자는 반유대주의와 인종혐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4. 나치는 그릇된 이념으로 무고한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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