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05화

끌림의 서 Chapter 1 피할 수 없는 외로움

어른은 스스로 위로할 줄 안다

by 지영Robin
하이 샤파 블랙 에디션 KI-200B_2022년 구매 목록 중 하나


새벽에도 지치지 않고 극악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에 눈을 뜹니다. 바깥의 소리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중창의 견고함마저 뚫고 들어오는 그 드센 소리에 진절머리를 치다가도 짧은 생애를 살다가는 그 애처로움을 떠올립니다.

7년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살다가 4차례에 걸쳐 변태를 했다가 비로소 세상으로 나와 7일~20일 정도를 살면서 짝짓기를 하고 삶을 마감하는 매미의 생애. 그것을 일깨울 때마다 괜히 한스러워 그렇게도 울어대는 것이니, 내가 좀 참아보련다 하며 혼잣말을 하곤 합니다.

오늘 아침에 혹시 매미소리에 잠이 깨셨나요?



며칠 전, 우연히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라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습니다. 서른여섯의 전도유망한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던 마지막 연차에 그에게 암이 찾아오면서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적 태도로 투병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삶의 의지를 담담히 담은 글이었습니다.


2015년 3월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기고 그의 숨결은 결국 바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영문학, 생물학을 공부하고 영문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받은 다음 문학, 철학, 과학과 생물학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는 중이었습니다.

이제 막 최고의 의사로 교수 자리까지 제안받은 그때, 그러니까 목표를 이루고 인생의 정점이다 싶던 그때에 만약 나라면 어떠했을까 이입해봤습니다. 병을 짐작하고 확인하는 과정까지는 오롯이 혼자서 지독한 외로움을 맞닥뜨려야 했을 것입니다. 한껏 휘몰아치는 폭풍의 소용돌이에 갇힌 것과 같을 테니까요.


7년을 땅 속에서, 7일에서 길어야 20일을 살다가는 매미와 폴 칼라니티의 삶이 너무나도 겹쳐 보여, 매미의 울음소리를 성가셔하기가 미안합니다.

한편 그의 담담한 필치로 써 내려간 글 속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애정, 그리고 휴머니즘을 보았습니다. 늘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야 되겠구나 하는 평범한 진리도 불러냅니다.



문득 지금껏 살 수 있어서 감사했던 순간 중 한 순간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머금습니다. 철없어 보이지만, 나는 그것이 무척 행복했습니다.


이른바 "국민학교"에 다닐 때, 끝내 가지지 못했던 "연필깎이"가 그것입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라면 누구나 알 법한 하이 샤파 기차 연필깎이. 그건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이기에 묘한 결핍감으로 기억되는 물건입니다.


내가 가졌던 연필깎이는 선물 받은 하이 샤파 삼각모양의 그것이었는데, 기차 연필깎이가 아니어서 실망한 선물인 데다, 그것을 가진 친구가 내내 부러웠던 마음이 꽤 오래갔습니다. 아예 연필깎이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차 연필깎이만 보면 눈길이 오래 머물곤 했으니, 참 이해하기 힘든 결핍감입니다.


그러다 그 기차모양 연필깎이가 블랙 에디션이라며 온라인 쇼핑몰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며칠 두고 보다가 가격을 치르고 구매를 했습니다. 택배 배송을 한 두 번 받는 것이 아닌데 처음인 거마냥 왜 그렇게 설레던지요.



택배가 도착하고 상자를 뜯자마자 꺼내서 바로 사진을 찍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주위 친한 이들에게 사진을 보내주니 모두가 추억의 물건이라며 좋아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 공감대에 웃다가 문득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결핍감을 스스로 채웠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행복해졌습니다.


돈을 버는 기쁨보다 고단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지만 가끔 소소하고 기특한 소비는 돈을 왜, 누구를 위해서 버는 것인가에 대한 즐거운 메아리 같습니다.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결핍감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될 때, 참 다행스럽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가끔 좋은 점은 스스로 자신을 위로할 줄 아는 점입니다.


그러하니, 당신!

작고 소소하더라도 나를 위로하시길.

살아있는 축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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