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사소한 몇 가지
빨갛고 단단한 방울토마토를 찬 물에 열심히 씻습니다. 꼭지를 따고 그 부위에 십자가 모양으로 칼집을 살짝 냅니다. 옆에서는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폰을 켜고 스톱워치를 켜고 칼집 낸 방울토마토를 끓는 물 안으로 투하합니다. 딱 20초만 넣었다 빼야 하는데 살짝 물 안에서 둥글리는데 20초가 어느새 넘어갑니다.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불을 끄고 데친 방울토마토를 찬물을 다시 입힙니다.
십자가 모양으로 칼집을 낸 부위에서 살짝 벗겨진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냅니다. 더 뜨겁게 물에 있었던 토마토는 살짝 뭉개지려고도 합니다. 딱 그 20초를 못 지킨 것이 못내 아쉬워 혀를 찹니다. 20초보다 적게 있으면 껍질이 벗겨지지 않아 곤욕스럽고 20초다 몇 초 더 있으면 물러지려고 하니, 그 마의 20초!!
다음에는 꼭 20초를 정확히 지켜야지, 내심 굳게 다짐을 합니다. 껍질 벗겨진 방울토마토를 통에 맞춰 잘 담습니다.
그다음은 레몬즙 10ml을 내기 위해 레몬을 반을 가르고 스퀴즈에 눌러 즙을 열심히 짜냅니다. 그리고 양파 반 개를 다지라고 하는데 내 멋대로 그냥 양파 한 개를 다집니다. 올리브 오일 30ml, 발사믹 식초 10ml, 꿀 10ml, 소금 반 스푼 정도를 넣고 열심히 섞어줍니다. 잘 섞였다 싶으면 그대로 통에 들어가 있는 방울토마토 위에 소스를 넣어줍니다.
뚜껑을 닫고 위아래 소스가 묻히고 밸 수 있도록 흔들어줍니다. 그것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고 하루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의 하루가 지난 후, 마리네이드 된 방울토마토 몇 알을 예쁜 그릇에 담아 반찬으로 먹습니다. 밥과도 어울리고 특히, 고기와 정말 잘 어울리니, 먹고 나면 느끼함도 사라지고 뒷맛도 깔끔합니다.
이상, 큰 요리실력이 필요 없으나, 음식 먹을 때 내어놓으면 굉장히 음식에 진심인 사람처럼 만들어주는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추천드립니다.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작년 퇴사 후, 곧잘 만들어 먹는 반찬류(?)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자취생활에 이래저래 해 먹는 요리는 많지만 쟁여놓고 꺼내는 반찬은 잘하지 않는 편입니다. 냉장고에 화석이 되어 가는 그 반찬들을 보면 끌리지는 않고, 또 버리자니 그것을 공들여 만든 사람의 노고를 무시하는 듯한 죄책감으로 괴롭습니다.
그래서 냉장고를 자취생활 15년 만에 새로 바꾸면서 음식이나 반찬을 만들어서 넣어두지 말고, 그때그때 만들어먹자고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딱 한 때 해먹을 양만큼의 재료만 사두고 밑반찬은 넣어두지 않는 결심은 습관이 되어 6년째 잘 지키고 있는 편입니다.
다만, 토마토 마리네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불 앞에서 오래 서서 나의 노동을 요구하지 않고 껍질을 벗기는 정도의 성가심만 있을 뿐인 데다 한 서너 끼 정도면 다 먹을 수 있으니, 냉장고에서 화석이 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맥주 마실 때 안주삼아 먹으면 두 끼 정도로도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외로움에도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사소한 몇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방울토마토 꼭지를 따고 십자가 모양의 칼집을 내고 데쳐진 후 껍질을 벗기는 그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동작이 주는 안정감은 위안이 됩니다. 하루 정도의 기다림이 있으니, 또 나름의 작은 설렘도 있습니다.
게다가 무엇과 함께 저것을 먹어야 잘 어울릴 것인가, 술을 한 잔 곁들일까 말까 하는 그 잠깐의 고민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메인 요리를 무엇으로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더 살려줄 요리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건 주객이 전도된 혹은 발상의 전환 같으니까요.
외롭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외로움을 없애고 싶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것, 또 술로 버텨내려다 술에 지고 마는 것과 같은 중독에 빠지는 것 따위의 위험성 말입니다.
그래서 외롭지 않으려는 것보다 외로움에도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사소한 몇 가지들을 많이 가지는 것이 훨씬 나은 듯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외로움과 스트레스에 100%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인 데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이니까요.
20대에는 외로움이 생경했던 탓인지, 공지영 씨의 [고등어]란 소설 속에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늘 신념처럼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 소설의 글귀는 바로,
* 이 세상에서 가장 올바르고 가장 정직하게 세상과 대결하려 했던 고귀한 영혼들의 저술
* 올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 저녁 아홉 시가 지나면 천오백 원으로 값이 내리는 이천 원짜리 장미 한 다발
* 나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
* 그리고 열정적이고 용감무쌍한 하루하루
- 93년 11월, 노은림의 유고 일기 중에서 -
저 글귀는 외로움으로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나를 바로 세우게 해 주었습니다. 외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라기보다 나에게는 외로움에도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것들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스트레스가 차오르고 뇌는 마른걸레 쥐어짜이듯 바삭거리는 위태함으로 휘청이는 날의 퇴근길에 가끔 나를 위해 꽃 작은 한 다발을 삽니다. 꽃이 주는 위안이 저녁과 밤에 차분히 내려앉습니다.
그러하니, 당신!!
그 버겁고 외로운 순간은 지나가도록 되어 있으니,
오늘을 용감무쌍하게 살아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