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을 기품
2021년 6월 비 내리는 창덕궁 후원
궁궐을 자주 함께 가는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의 생일 때에도, 점심이나 먹자 하고 만났을 때에도, 그냥 커피나 한 잔 하자 할 때에도, 괜찮은 전시회를 다녀와서도 마치 정해진 루트인 듯 당연스레 혹은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합니다.
대화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걷고 가끔은 앉아 쉬기도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목격하며 예전에 왔을 때 얘기도 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때로는 역사 속 이야기를 가지고 진지하게 나눕니다. 좋은 사람과 같이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을 듯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을까요?
작년 6월 장마철,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때에 우연히 창덕궁을 들른 날, 그날의 마지막 방문객을 받는 후원에 입장 가능한 마지막 두 명이 되어 신나게 들어갔습니다. 그 친구나 나나 대학교 다닐 때 과제하느라 들어와 본 이후로 가보고 싶어 해도 운이 안 맞고 예약은 다 차서 안타깝게 늘 스치기만 했던 곳을 마흔이 훌쩍 넘어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벅차고 감개무량했는지 모릅니다.
창덕궁의 후원은 볼 때마다 내가 조선의 왕이었어도 진심으로 아끼고 어여뻐하는 사람에게만 허락하고 싶었을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의 미움이 한 털이라도 박힌 자에게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게 할 것이라 괜히 내가 마음을 먹게 됩니다.
왜냐하면 제왕이 번잡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조용히 몸의 피로를 씻고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정신적 휴양의 장소였으니 그를 방해하는 어떠한 잡스러움도 들이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문득문득 구중궁궐에서 짓쳐 드는 외로움,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 정도의 증오와 번뇌에도 기품을 잃을 수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의 아름다움과 애잔함, 낭만은 충분히 위안이 되었을 듯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글귀가 눈에 와서 박히는 요즘입니다.
"고귀함, 조화, 균형, 인생의 달콤함, 행복,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작별을 고할 각오를 해야 하는 미덕이자 품위다. 그것들은 다른 시대에 속해 있었으니."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 슬픔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사는 시대는 야만의 시대인가 의심하는 중이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잔자키스가 죽은 지도 6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한 것을 보면 암울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다 한편으로 그럼에도 놓지 않아야 할 "기품"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모두가 야만인 듯한 시대에 기품을 유지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나마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가는 때, 특히 더 필요한 기품이라 절실하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나마 세상을 덜 야만스럽게 하는 노력이 아닐까 하면서요.
"재력과 권력, 미모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기품이다."
- 가토 에미코 <거품의 룰> 중에서.
위선이나 가식이 아닌 기품은 이럴 때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 지금까지의 경우가 아닌 때.
둘. 불행하게 되었을 때.
셋. 남의 적의를 보았을 때.
넷. 배신당했다고 느꼈을 때.
다섯.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섯. 생각대로 됐을 때.
일곱. 남들 앞에 나설 때.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갖춘 기품을 내보인다는 것은 홀로 수없이 마음을 가다듬고 씁쓸함과 외로움을 곱씹었을 것이기에 더 고귀할 것입니다.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
처럼 청년의 시기가 지나고 중년이 되고 보니, 주위 사람들 대부분 크고 작은 혼란과 불행, 역경을 겪거나 겪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내게 온 불행이나 행복 앞에서, 또는 다른 이들의 그것 앞에서 겸허할 수 있기를 간절히 노력해봅니다.
그러하니, 당신!!
당신의 하루가 무탈하기를.
그리고 기품을 지키려 애쓰는 당신을 안아주는 공간이 충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