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26화

끌림의 서 Chapter 3 나누어 짊어지는 두려움

9월에 느끼는 크리스마스의 축복

by 지영Robin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돌기 시작했는데, 벌써 크리스마스는 웬일인가 싶으시죠?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곧 12월이 될 테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기도 하니까요.

좀 싱거운 소리를 해봅니다.


고등학교 3월 새 학기였는데(몇 학년 때였는지는 오락가락함) 새 담임선생님의 첫인사가 "메리 크리스마스"였습니다. 너무 생뚱맞기도 하고 또 너무 진지해서 웃지도 못하고 반응을 어찌해야 하나 눈만 데구루루 굴리며 서로 눈치를 보던 장면과 3월이니 12월은 다가오고 있는 게 맞지 않느냐는 말에 다들 '아~~~~'하다가 풉하며 싱겁게 서로 웃던 기억이 납니다.


살짝 얼어있던 분위기가 슬쩍 녹게 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절묘한 인사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오늘 인사는

"메리 크리스마스~!"

입니다.



"나는 젊은 날의 내 아버지가 때때로 내 가엾은 아들처럼 느껴진다.

뿌리 뽑히고 거덜 난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은 늘 눈물겹다."

-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중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글 중에서


보편적으로 딸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먼저 연민과 공감대를 더 크게 가지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 시달리다 중년이 되면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되고 안쓰러움을 가지며 외로움을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딸입니다. 내가 그렇습니다.


김훈 작가의 저 문장을 보고 나는 어머니가 더 떠올랐습니다. 뿌리 뽑히고 거덜 난 삶 속에서 끊임없이 견뎌내고 삶에 대해, 신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한 여자가 생각이 나서 먹먹했습니다.


그건 어떤 한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즐거운 휴일이었습니다. 영화나 TV에서 보던 대로 캐럴을 듣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좀 하며 분위기를 내고 외식을 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선물을 당연하게 받고 버터크림 케이크를 먹고 늦게 자는 것이 허용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어린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젊은 여자가 고단한 시집살이와 육아에 잠시나마 즐겁기 위해서 애를 쓴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봅니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 상상했을 아이들과 남편과 보내는 오붓한 크리스마스는 로망 중 하나였을 테니까요.


그러다, 잘 나가던 집안이 경제적으로 주저앉게 되는 그저 그런 전형적인 클리셰는 우리 가족에게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전업주부로만 살던 젊은 엄마가 생계 전선에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나이 든 엄마는 그때 매일매일 처음 하는 일과 두려움 때문에 밤마다 울었다고 회상합니다.) 할머니가 오빠와 나를 돌봐주시고 엄마와 아빠는 밤에 내가 잠들면 들어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된다 한들, 이전과 같은 크리스마스는 아닐 테니, 다소간 맥이 빠져 있었을 겁니다. 어느 날 엄마가 크리스마스 장식은 그대로 있으니, 사는 집 마당에라도 해보라고 했는데 꽤 시니컬하게 굴었습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가 지나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추위에 옹송거리며 일어나 방문을 열었을 때, 가장 처음 본 것은 마당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와 서리가 앉은 사철나무에 얹어진 크리스마스 장식들이었습니다. 전날 저녁까지는 없었던 그것들은 늦은 밤, 집에 온 엄마가 잠을 줄여가며 작은 불빛에 의지해 얼기설기 얹은 것이었겠지요.


집이 망해, 아들과 딸이 기가 죽어있을까 봐 혹은 그들이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즐겁고 설레길 바라는 그런 마음과 다른 선물은 못해주더라도 그 마음은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노력은 애틋했지만 어린 나는 어쩐지 부아가 났습니다.

철딱서니가 없어서, 이전보다 훨씬 초라해 보여 외면하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 해 이후,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하면 그때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납니다. 추운 밤, 늦게 일을 마치고 온 엄마가 옷깃을 여미며 혼자서 그것을 했을 것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건 그때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였습니다.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가엾어서 안아주고 싶습니다.


삶은 고되고 처음 해보는 익숙지 않은 일과 사람들의 속임수와 배신이 일상인, 그래서 매일매일 눈 뜨는 게 두려웠다던 엄마가 오붓한 크리스마스의 장면과 그로 인한 삶에 대한 기쁨을 이어주려 한 것은 내게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삶의 가장 밑바닥 속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인간관계의 저 끝, 감정과 기운이 지하를 뚫고 들어가는 그런 때에 차갑고 언 마당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떠올려봅니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희망이라는 건 때로 그런 것에 숨어있는 게 아닐까 하면서요.


"뿌리 뽑히고 거덜 난 삶 속에서 삶에 대한 신뢰를 발견하는 일이 눈물겨웠을" 그녀에게 이제 와 그때 크리스마스 인사를 제대로 해봅니다.


"사랑하는 엄마,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 덕에 크리스마스가 늘 즐거웠어요. 앞으로는 내가 당신에게 기쁨을 드릴게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휑뎅그렁하니 서리내린 마당과 나무들에 걸려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이 먼저 떠오릅니다. 스산하고 다소 초라했지만 분명히 나는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고,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때때로 주눅 든 소심함이 들고 자존감이 상처입을 때, 그 장면에서 느꼈던 애정과 안도감은 더없이 제일 좋은 회복제였습니다.


그러하니, 당신!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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