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끌림의 서 28화

끌림의 서 Chapter 3 나누어 짊어지는 두려움

분노를 해가 질 때까지 갖고 있지 말자

by 지영Robin
분노를 사라지게 하는 노을

화가 나다 못해, 지글지글 끓어오르다 결국 하얀 재만 남은 것 같은 날.

다음 일은 생각하지 말고 다 휩쓸어버리고 싶은 격렬한 충동. 날 것 그대로의 감정대로 움직일 수 없어 고통스러운 순간이 겨우 지나고 나면 이제는 피로감이 온몸을 옭아맵니다.


그런 날이면 분노의 대상에게 어떻게 이 분함을 갚아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끓어오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불꽃은 꺼지고 하얀 재는 바람에 먼지를 일으키며 날아갑니다.



적당히 분노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분노의 적정선은 어느 정도일까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우선 나는 언제 화가 날까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나의 약한 부분이 건드려지는 것이라 여깁니다. 즉 내가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그림자를 발견할 때 불쑥 화가 납니다.


예를 들면, 가 자신 있어하는 몇 가지 중에 하나는 길눈이 밝아 길을 잘 찾습니다. 지금처럼 구글맵과 같은 것이 없던 시절에는 종이로 된 지도를 보며 유럽 도시를 잘 다녔습니다.


그러니, 한 번쯤 가본 곳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다는 오만함마저 있었다가 어느 날, 같은 곳을 무척 헤매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곳을 내가 설계한 것처럼 찾는 곳이 없어졌다며 화를 냈습니다.


씩씩대면서도 그런 것에 화를 내는 나 자신이 어이없고 창피했습니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단지 길을 잘 못 찾은 것 때문이 아닌, 자신하던 것이 꺾여질 때 화를 못 참는구나, 그리고 헤맨 것에 대해 단번에 해답을 찾지 못하면 그것을 참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입니다.



그러면, 화가 나면 난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가.

1. 숨이 가빠진다.

2. 눈이 튀어나올 듯 압력이 세진다.

3. 손이 떨리고 성대가 눌려 목소리가 갈라진다.

4. 식은땀이 난다.

5. 머릿속이 하얘지며 말문이 막히며 울컥한다.


와 같은 신체증상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저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내가 화가 많이 나려 하는 시그널로 알아챕니다. 심호흡을 하면서 끓는점이 좀 식기 시작하면 괜찮아집니다.



심호흡으로도 끓는점이 계속 지글거리면 그건 진짜 분노로구나 합니다. 화는 신체증상으로 얕은 충동이 불쑥거린다면 분노는 내부에서부터 깊은 화상을 입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분노할까요?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할 때, 그리고 그런 상황이 내내 지속되는 것과 그것이 도저히 아닌 것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할 때입니다.


저온화상을 입은 듯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건 그런 거라고 억지로 참아야 할 때, 나 혼자만의 문제라면 다치더라도 들이박겠지만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로 인해 넘어가야 할 때면 그것은 사라지지도 않아 오래도록 나를 괴롭힙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보다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절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릅써야 하는 것도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도 그럴 때 오롯이 혼자임이 사무칠 때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를 지닌 채, 나이 든 사람들의 인상과 목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배우고 결심한 것을 끄집어냅니다.

분노는 원망을 만들고 원망은 고약한 인상으로 굳어지게 하며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을 말해 주는 여러 인간 군상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가릴 수 없는 허물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주변의 삶은 그 어떤 가르침보다 날카로웠습니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어느 누군가로 괴로울 때면 원망으로 이어지지 않게 노자의 말을 떠올립니다.


"누가 너를 모욕하더라도 앙갚음하려 하지 마라.

강가에 앉아있노라면,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 가는 것을 보게 되리니."

(직장의 한쪽 벽에 항상 적어놓던 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 "작은 아씨들"의 어머니가 해주던 말,

"분노를 해가 질 때까지 갖고 있지 말자."로도 다독여봅니다.


그러하니, 당신!!

오늘의 화는 바깥에서 모두 털어내시길.

해가 질 때면 괜찮아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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