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학교 하랑 EP 5
어느새 떨림을 멈춘 소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움직임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림은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먼지를 털어준 듯 깨끗하게 미술실 뒤편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이렇게 그림을 계속해서 어루만지고 아껴왔던 것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에 잠긴 소녀를 바라보던 숀은 이내 그림을 뒤집어 보라고 손짓하였습니다. 벽에 걸린 못에서 그림을 떼어내어 소녀는 그림 뒤편 캔버스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또박또박 정갈하게 쓰여있는 글씨체가 익숙합니다. 항상 고된 회사일을 마치고 책을 읽으면서 필사를 하는 소녀의 다이어리 안에도 적혀있는, 익숙한 그녀 자신만의 필체.
그리운 듯 글씨를 따라 손가락을 쓸어내려가던 소녀는 그러나 그 문장 밑에 또 다른 문장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장난스럽게 삐뚤빼뚤 쓰여있지만 그럼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글씨체. 마치 해바라기 같은 밝음을 담고 있는 글씨체가 소녀가 썼던 글씨 밑으로 적혀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지지 않았어. 내가 먼저 출발했거든. 얼른 뒤따라와라 2등아’
아아, 어떻게 잊겠어요. 이 글씨체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던 미술실에서의 추억을. 우리 더 친해지자면서 수업시간에 몰래 편지를 쓰고 서로 말도 안 되는 농담만 잔뜩 쓰인 편지를 보면서 장난을 치던,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있던 시간을.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밝은 해바라기 같은 소녀의 웃음을.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쉰 소녀가 이내 흐엉~ 하는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막혀있던 무언가가 크게 뚫어진 듯 소녀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떨어지는 눈물방울 속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답답했던 감정도 같이 흘려보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우스운 모습이 되어서도 소녀는 그 상태 그대로 숀을 바라보았습니다. 숀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소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려 주었습니다.
“알고 계셨죠. 아저씨”
소녀는 아직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그를 다그쳤습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자네가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숀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습니다.
“축하해. 도망치지 않고, 다시 앞에 설 준비가 된 걸 말이야.”
이제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말 안 해도 알겠지? 숀은 한마디 말을 남기고 저벅저벅 어두운 복도를 걸어 사라졌습니다. 그의 등을 향해 가만히 손을 흔들던 소녀는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화아~ 내쉰 후 이내 휴대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익숙한 듯 자주 찾는 연락처를 클릭한 후 익숙하고 그리운 전화번호를 꾹 눌러봅니다.
뚜르르
뚜르르
찰칵
연결음 너머로 익숙하고, 그토록 듣고 싶은 그녀의 숨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전달됩니다.
“뭐냐”
몇 년 만에 한 연락임에도 해바라기소녀는 짐짓 덤덤하게 물어봅니다. 질 수 없지! 소녀 역시 최대한 쿨하게 (그러나 여전히 물기가 좔좔 넘치는 목소리로) 이야기해 봅니다.
“야… 술 한잔 하자”
“너가 사라”
“왜?”
“나 저번달에 퇴사했어. 백수야 ~ “
크크~ 자유다 자유! 전화기 너머로 밝은 과즙이 팡팡 터지듯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너답다.”
소녀 역시 즐거운 듯 미소 지었습니다.
나의 해바라기. 끝.
- 'EP6. 제육볶음은 쌈무를 싣고'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