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발견
풍성했던 봄꽃들의 행렬이 하나둘 끝나면서 호수 주변도 조금은 숨을 돌리는 듯하다. 그래도 석촌호수는 산책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으로 여전히 분주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나들이 나온 할아버지.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롯데 잔디마당의 인파를 헤치고 심호흡을 한다. 오늘의 일과가 시작되는 일터가 눈앞에 있다.
삼 년째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는 센터가 바로 석촌호수 동호 쪽에 있다. 석촌호수는 서울 유일의 자연 호수로 수질이 좋다. 벚꽃 축제, 불빛 행사는 물론 여름에는 아쿠아 슬론(수영 + 마라톤)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자리한 센터에는 삼십여 명의 관광서포터즈들이 교대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안내가 주 업무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간에는 내국인의 안내를 주로 도와왔다. 시설물 위치를 안내하고 관광 정보 책자를 챙겨 주고 걸려 오는 민원이나 문의 전화에 응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21km 송파둘레길을 완주하고 오신 분들에게, 완주 인증서와 기념품인 배지를 전달하는 일도 업무 중 하나다. 계절에 따라서는‘움직이는 관광정보센터’를 운영하여 지하철역 주변이나 거리에 직접 나가 안내하는 때도 있다. 요즘은 계절이 계절이라 외국인 관광객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센터에는 영어, 일어, 중국어 담당 세 명이 반나절씩 근무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정과 시간을 미리 계획할 수 있어 개인적인 일을 보거나 직장이 있어도 큰 지장 없이 일할 수 있는 점도 좋다. 남녀 연령대도 다양하고 성격이나 스타일도 다르다. 하는 일이 어렵거나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서포터즈에 합류하기 위해 3:1의 경쟁을 뚫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해외 거주 경험을 잘 포장한 탓인지 1차 서류전형은 무난히 합격했다. 그러나 여러 면접관 앞에서 공식적인 면접을 보는 것은 낯설기도 하고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다. 다행히 합격이 되고 일주일간의 서비스교육과 관내 숲과 공원을 견학하고 심폐소생술의 교육을 받은 후 위촉장을 받았다.
함께 근무하다 보면 서로의 개성과 장점도 알게 되고 개인사도 조금씩 알아간다. 숫기가 적고 내향적인 나는 오랜만에 하는 조직 생활이라 그런지 어색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말이 많은 사람, 말 붙이기 어려운 사람, 일을 크게 벌이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왠지 불편했다. 점차 시간이 가고 관심을 가지게 되니 불편했던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들로서는 내가 또 얼마나 불편한 사람이었을까…. 결국 사람 관계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일은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일상과 아류에 빠지기 쉬운 편견을 돌아보는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요즘 전문직 여성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가정과 자아실현 사이를 어떻게 양립시키며 사는지 그 치열함을 듣는 일도 소중한 시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유일한 나의 사회생활이기도 한 이 일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마흔두 개의 초록처럼 저마다 다른 빛깔의 이름들, 저마다 다르게 반짝이는 개성들. 다름을 인정하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이 현장에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또한 이 일을 하면서 막연하게 마음속에 담아왔던 ‘사회공헌’이라는 말이 허울이나 허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젊은 날에는 막연히 나도 나이 들면 내가 누린 혜택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봉사도 건강하고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병원이나 도서관 같은 공식적인 자원봉사는 나이 제한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오늘도 서로 다른 우리는 방문객을 위해 일정을 체크하고 자료를 준비한다. 전화를 받는 일, 안내를 하는 일, 민원을 보고하는 일, 그리고 동료 서포터즈와 서로 다른 생각과 개인적 경험을 나누는 이 자리가 한층 소중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오늘은 또 어떤 방문객을 만나게 될까, 작은 흥분에 조금은 들떠 있는 시간이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 오늘과는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기에 사는 일은 충분히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오늘도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의 시 ‘마흔두 개의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