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셀린 May 01. 2023

저마다 다른 색깔의 이름으로

관계의 재발견

  

 풍성했던 봄꽃들의 행렬이 하나 둘 끝나면서 호수 주변도 조금은 숨을 돌리는 듯하다. 그래도 석촌호수는 여전히 산책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으로 분주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도 보이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나들이 나온 할아버지도 보인다.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롯데 잔디마당의 인파를 헤치고 심호흡을 해본다. 오늘의 일과가 시작되는 일터가 눈앞에 있다.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는 센터가 바로 석촌호수 동호 쪽에 위치하고 있다. 석촌호수는 서울 유일의 자연호수로 수질이 좋아 여름에는 아쿠아슬론(수영 + 마라톤)이 개최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삼십여 명의 관광서포터즈들이 교대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을 위한 안내가 주 업무지만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아 그간에는 내국인의 안내를 주로 도와왔다. 시설물 위치를 안내하기도 하고 관광정보 책자를 챙겨 주기도 하고 걸려오는 민원이나 문의 전화에 응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21km 송파둘레길을 완주하고 오신 분들에게 완주 인증서와 기념품(배지나 마그네틱)을 전달하는 일이 큰 업무이기도 하다. 계절에 따라서는 움직이는 관광정보센터를 운영하여 지하철역 주변이나 거리에 직접 나가 관광 안내를 하기도 한다. 요즘은 노 마스크에 계절이 계절이라 외국인 관광객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센터에는 영어, 일어, 중국어팀 세 명이 반나절 씩 근무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일정과 시간을 전 달에 미리 계획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직장이 있어도 큰 지장 없이 일할 수 있는 점도 좋다. 남 여 연령대도 다양하고 성격이나 스타일도 다른 사람들. 같은 언어팀은 아니지만 함께 근무를 하다 보면 서로의 개성과 장점도 알게 되고 개인사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나 숫기가 적고 내향적인 나는 외향적인 사람과 근무하다 보면 가끔 피곤함을 느끼기도 하고 불필요한 질문을 받으면 불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하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 그리 크지 않아 특별한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멀어지려는 마음을 데려오곤 했다. 


 2여 년이 지난 지금,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하느라 주춤거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어쩌면 유일한 나의 사회생활이기도 한 이 일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다. 사실, 하는 일이 어렵거나 육체적 노동이 많이 필요하는 일은 아니지만 이 서포터즈에 합류하기 위해 3:1의 경쟁을 뚫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서포터즈 모집 공지를 보고 영어팀에 지원했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해외거주 경험을 잘 포장한 탓인지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뛰기도 했다.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기업체 면접처럼 여러 면접관 앞에서 면접을 보았다. 서포터즈 선발을 위해 실시하는 공식적인 면접이 낯설기도 했고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다. 시험 덕은 있는 편이라 합격이 되어 일주일 간의 서비스교육과 관내 숲과 공원을 견학하고 심폐소생술의 교육을 받은 후 서포터즈 위촉장을 받았다. 


 항상 새롭게 느끼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마흔두 개의 초록처럼 저마다 다른 빛깔의 이름들.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개성들. 다름을 인정하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이 현장에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말이 많은 사람, 말 붙이기 어려운 사람, 일을 크게 벌이는 사람. 어쩌면 내 입장에서 보면 불편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나는 또 얼마나 불편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사람관계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되는 지도 모르겠다. 

 불편했던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가지니 그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지 듣는 일은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내 일상과 아류에 빠지기 쉬운 편견을 부수는 데 자극이 되기도 했다. 특히 요즘 커리어우먼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가정과 자아실현 사이를 어떻게 양립시키며 사는지 그 치열함을 듣는 일도 소중한 시간 중의 하나다. 또한 이 일을 하면서 막연하게 마음속에 담아왔던 ‘사회공헌’이라는 말이 허울이나 허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젊은 날 막연히, 나이 들면 나도 내가 누린 혜택을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봉사도 건강하고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병원이나 도서관 등의 공식적인 자원봉사는 나이 제한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오늘도 서로 다른 우리는 방문객을 위해 일정을 체크하고 자료를 준비한다. 전화를 받는 일, 안내를 하는 일, 민원을 보고하는 일, 그리고 동료 서포터즈들과 서로 다른 생각과 개인적 경험을 나누는 이 자리가 한층 소중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오늘도 나와는 다른 서포터즈와 방문객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작은 흥분에 조금은 들떠 있는 시간. 어쩌면 어제와는 다른 오늘, 오늘과는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기에 사는 일은 충분히 흥분되고 설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우리는 오늘도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다. 

*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의 시 ‘마흔두 개의 초록’



이전 17화 여럿이서 또 혼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