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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려은 Feb 07. 2024

어느날 갑자기, 분리불안





6살 여름 어느날 갑자기. 아이의 내면에서 차곡차곡 쌓여있던 오만가지 불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집에서조차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애타게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아이의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도대체 왜 그런거지. 아무리 태옆을 감아보아도 원인이라고는 그 때 그 일밖에 없었다. 그 한 번의 일 때문에 아이는 유치원 현관에서 안들어간다고 울고, 집에 와서도 내일 유치원 가는 것을 걱정하며 징징대고, 피아노 학원 문 앞에서도 실랑이를 해야했다. 엄마가 데릴러 오지 않을까봐,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버릴까봐 걱정이라고도 했다. 아이에게 그 일은 처음 겪었던 두려움이었다.




아이는 도전하길 좋아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아파트 앞동에 사시는 할머니가 아이 혼자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혼자 가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잘 가는지 보려고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아이가 1층 현관밖으로 나오질 않아 슬슬 걱정이 되었다. 동생을 챙겨 내려갔을 때 아이는 패닉이 되어 울고 있었다. 1층 출입문 현관이 아이의 키를 인식하지 못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움츠러들었고 혼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침마다 아이는 늘 눈물바람이었고 그런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길을 나서는게 영 마음이 쓰였다. 선생님이 토닥거려 유치원으로 데리고 들어가도 방과후 교실이나 영어수업처럼 교실이 바뀔 때면 다시 눈물바람으로 선생님들을 곤욕스럽게 하는 일이 잦았다.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휴직을 하고 아이가 원하는만큼 옆에 있어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학교 교사로서 학기중에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아지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안절부절 못한 아이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그동안 학부모들에게 추천했던 소아정신과에 예약했다.




나는 초등교사이다. 1학년 담임만 여러해 하면서 분리불안 아이를 여러명 봤다. 교실 안에 들어오기조차 힘들어 우는 아이들, 수업 중에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보며 '무엇이 저 아이의 마음을 저렇게 힘들게 하는가.' 안타까웠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의 영유아기를 되돌아보고 부모의 양육태도를 들어보면 아이의 불안은 아이탓이 아니라 부모 탓이 대부분이었다. 이번엔 나를 되돌아볼 차례였다. 나는 이 아이에게 평온한 안정과 충분한 애정을 주었나. 집이라는 공간에 같이 있었지만 '그렇다.'라고 말하기에는 가슴 한켠이 불편하다. 아이는 늘 엄마를 갈구하고 있었다. 어떨 땐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책을 읽어주기를 바랬고,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함께 하고 싶어했다. 인형놀이를 해주는 날은 너무나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쟤는 6살이나 됐는데 왜 혼자 놀지 못하고 엄마를 힘들게할까. 학교에서 이미 진이 빠져 집에 온 나는 없는 기운을 끌어 모으며 힘겨워했다.




다들 그러면서 사는줄 알았다. 요즘 워킹맘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런데 불현듯 나는 그 와중에 무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해오던 아이가 이젠 자기 좀 봐달라고 우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울 땐 나도 눈물이 났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려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다보니 그제서야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6살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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