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사회 4편
가속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일 것을 강요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 안에서는 창밖의 많은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목적지 자체보다 얼마나 더 속도가 증가하는지에 천착하게 된다. 문명사회의 발전에 따라 증가하는 속도가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일찍이 경고한 바 있다.
짐멜은 1895년 7월 13일 빈의 정치, 경제, 과학, 예술을 다루는 주간지 <Die Zeit>에 <Alpenreise(알프스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다. 이 당시 철도의 건설이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모두가 이 빠른 속도를 찬양하며, 기술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선전하고, 누가 더 빠른 속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 경쟁에 몰두했다. 물론 그가 기술문명의 발전이 주는 이로움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등산이라는 개인적 사업에 비해 사회화된 대규모 사업의 엄청난 이점을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 결국, 이 사업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이전에는 힘과 수단으로 인해 도달할 수 없었던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옛날 좋은 시절의 여행 매력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사라졌다고 믿는 어리석은 낭만주의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프스에는 여전히 그런 즐거움과 고독, 고요함이 넘쳐나기 때문에 그런 낭만주의는 더욱 의심스럽다. 그러나 알프스 교통의 엄청난 확장은 우리 문화가 실제로 이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 게오르그 짐멜 -
하지만 짐멜은 기술문명이 가져다주는 육체적 휴식과 순간적 쾌락에 영적인 만족감이 잊히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이러한 영적인 만족감은 '교육'이라는 형태로 채워지게 되는데, '교육'은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의미하며, 그것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일임을 체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말하자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며, 용기, 의지의 힘, 이상적인 목표를 위해 모든 능력을 동원하는 것과 같은 윤리적 힘의 결과로 물질의 저항을 이기는 정신의 승리로 여겨진다. - 게오르그 짐멜 -
짐멜은 다른 저서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알프스로의 접근이 용이해졌고, 그것이 알프스에 대한 경외심을 없애고 알프스를 단지 "미학적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알프스의 정상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이제 '얼마나 빠르게' 정복했느냐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리고 알프스는 그들에게 기록을 세우기 위한 대상물로 전락했다.
작가 한병철은 <가속사회>에서 프랑스의 문호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를 인용하여 가속사회에서 배재된 '향기'의 가치를 되찾고자 한다.
투명성의 강제는 사물의 향기, 시간의 향기를 제거한다. 투명성에는 향기가 없다.... 프루스트에게 "즉각적 향락"은 아름다움이 될 수 없다. 무언가의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른 것의 빛 속에서, 회상을 통해 나타난다 - <투명사회>, 한병철, 69-70쪽 -
프루스트는 1913년에서 1927년에 이르는 14년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를 발표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피소드는 1권 초반에 등장하는 마들렌 에피소드로, 자발적 기억(mémoire voluntaire)과 비자발적 기억(mémoire involuntaire)을 주제로 한다. '자발적 기억'은 의식적이지만 불완전하고 종종 경험한 것을 주관적으로 왜곡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자발적 기억'에 속하는데 프루스트는 이러한 기억을 불완전하고 왜곡된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사실 우리가 어떠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에 접근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그가 경험한 것이 사실에 온전히 부합하기 힘든 것과 같다. 열 명의 사람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사건을 겪더라도 그에 대한 사실관계에 차이를 보일 수 있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점의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반면 '비자발적 기억'은 일종의 반사작용으로 근육 반사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감지되는 감각에 의해 발생하며, 핵심 자극이 특정 시점을 회상하게 하는 '플래시백'을 유도한다. 도착한 과거는 종종 이전에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프루스트는 당시 두 명의 인물에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 1859-1941)과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다.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1896)에서 기억을 두 가지 형태 회상적 기억(mémoire souvenir)과 습관적 기억(mémoire habitude)으로 나누는데, 프루스트는 1890년 먼 친척인 베르그손의 강의에 참석하여 자신의 기억 이론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이후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제창한 아인슈타인에 영감을 받아 기억을 시간이론으로 확장한다. 프루스트의 기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의식적' 차원에서 추상적으로 머물러 있던 기억과 사고는 빛바랜 사진과 같이 새로운 욕망을 자극할 수 없는 비생산적 회고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반면 우리의 감각과 함께 기록된 기억은 흑백의 '의식적' 기억을 공감각적인 경험으로 채색하여 현실화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어머니가 만든 마들렌과 관계된 모든 감각적 경험, 즉 모양, 소리, 맛, 냄새 등을 통해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 기억을 수정하고 되살린다. 버터향이 가득한 이 마들렌은 '가속사회'에서는 맛볼 수 없다. 가속사회에서는 마들렌향 향수, 마들렌 모양의 수집품, 마들렌 맛의 사탕과 같이 하나의 감각을 증폭시키는 제품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들렌이 연상시키는 과거의 순간, 공감각적 기억이 현실화되어 새로운 기억으로 저장되는 '창조적 기억'의 생산은 불가능하다. 포르노사회에서 지적했듯 투명성은 하나의 감각, 특히나 시각적 감각을 증폭시키는 기능은 탁월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다른 감각의 쇠락을 의미한다.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자신의 친구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의 콘서트 관람 후 자신이 느낀 강렬한 음악적 경험을 캔버스에 담았다. 음악을 색채로 번역하는 공감각적 시도는 칸딘스키가 지속적으로 했던 작업의 핵심이다. 칸딘스키가 회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콘서트장의 객관적 상황을 담은 '회상적 기억'이 아니다. 쇤베르크의 음악이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으킨 감각적, 정서적 반응이 자신의 눈에 비친 콘서트장의 장면과 융합되어 파편화된 감각들의 총체를 만들어낸다. 그가 전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으로 그는 관람자가 자신의 시공간을 통째로 경험하기를 원한다.
'가속사회'에 대해 짐멜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단순히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속사회'는 긍정성과 부정성을 모두 포함한다. 단순히 '가속' 자체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지'는 또 다른 죽음으로 우리를 몰아가기 때문이다. 가속과 정지의 양끝에는 '공허'가 기다리고 있다. 칸딘스킨와 프루스트의 예술은 우리에게 '공허로의 추락'을 막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원자는 향기가 없다. 원자는 비유의 매력과 서사의 중력을 통해 비로소 향기를 가진 분자로 통합된다.... 가속화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 아닌 까닭에 문제의 해결책도 느리게 살기에서는 찾을 수 없다. 느리게 살기만으로는 어떤 박자도, 어떤 리듬도, 어떤 향기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느리게 살기는 공허로의 추락을 막을 수 없다. - <투명사회>, 한병철, 70-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