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이 되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잘 맞는 음식이 있듯이 술도 체질에 따라 궁합이 잘 맞는 게 있다. 하지만 그 궁합을 무시하고 입맛의 관성에 따라서 잘 맞지 않는 술을 좋아했다. 마치 부모님이 반대하는 사랑을 이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처럼 불편하지만 그 달콤함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황처럼 늘 저녁이 되면 반주 한 잔이 떠오르면서 탄산이 팡팡 터지는 맥주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500ml 한 캔으로 시작된 맥주는 어느새 500ml 두 캔 세 캔이 되다가 심지어 1.5리터 피처를 마시고도 부족해 캔을 더 먹게 되었다. 탄산으로 알코올로 나의 식도와 위장은 고장이 날 지경이었고 덕분에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더 심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의존성 알코올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 해질 때까지 마시는 것도 아니고 간단히 반주 한잔하는 거야~”라며 와이프를 안심시켰지만 내 스스로도 절제하지 못하는 게 괴로웠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에게 주는 포상이었던 맥주가 어느새 나를 점령하면서 포상을 넘어 징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겨내지 못하고 술에 지배되어 몇 년을 보내게 되었다.
어중간한 것의 위험
“하나님은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건 싫어하셔~”라며 나에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스탠스를 지적했던 초등학교 때 친구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차라리 심한 중독이면 자각하고 변화를 강하게 시도했을 텐데 늘 후회하면서도 다시 저녁이 되면 간단히 한 캔만 할까 하면서 시작된 맥주 사랑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정신이 혼미해서 힘들 정도도 아니고 그다음 날 일상에 지장이 안될 정도지만 계속 이어지는 음주에 의해 나의 몸에 데미지가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가랑비에 젖어가듯 나빠지는지도 모르게 술에 지배되어 가던 어느 날 결국에 사단이 나고 말았다. 중간중간 병치레로 잠시 금주를 한 적은 있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시름시름 3~4주간 앓았다. 열이 오르고 두통은 사라질 줄 몰랐다. 감기약을 먹으니 조금 나아지는듯하다가도 다시 하루 이틀 뒤 열이 오르고 근육통에 두통이 나를 괴롭혔다. 큰 병원에 가서 알게 된 폐렴이라는 병명으로 3~4일간 입원을 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의 몸이 그동안 나 스스로를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나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경고를 보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건강이 당연한 내 것이 아닌 내가 잘 지켜주고 챙겨주어야 하는구나.
혼술은 금지
술 자체를 한 번에 끊기보다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결심을 했다. 첫 번째로 절대로 집에서 혼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음주의 트리거가 되었던 저녁시간의 반주도 도화선을 잘라내면서 자연스레 집에서는 술이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유혹의 순간이 있었지만 나와 가족과 함께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기로 다짐하면서 집에 있는 술은 정리를 했다. 차라리 정말 마시고 싶으면 약속을 잡아 밖에서 마시기로 다짐을 했는데 오히려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 밖에서 회식이나 약속이 있을 때는 마음껏 즐겁게 먹었다. 그렇게 on/off가 되어가며 점점 술 생각이 덜 나게 되었다.
생각 회로의 변화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뇌 회로는 술을 마시고 나서 느끼는 불편함에 집중이 되었다. 술 마시고 다음날에 일어나서 느끼는 불쾌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더 자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터졌던 도파민이 그걸 참아내고 그다음 날에 개운한 상태에서 기상하는 것에서 느끼는 쾌감으로 치환되었다. "No Cigaret, No Alcohol, No Drug"라고 외치는 트럼프처럼 알코올을 단절을 하지는 못했지만 인류가 불을 사용하는 것처럼 유용한 도구로써 절제하고 안전하게 잘 활용하는 것으로 알코올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바뀌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