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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카 2시간전

자유남편 2화 _ 빈자리



24.7.19 1일차

자유야?

다들 나의 자유에 관심이 많다.

정우형도 재훈이형도 채영네 아빠도 나의 자유를 묻는다. 그 외 어린 시절 친구 녀석들까지.​

​​

쿨한 와이프는 미국으로 가기 전 한마디를 남겼다.

“다시 언제 있을지 모를 자유니까 마음껏 즐겨”

헤어짐의 아쉬움과 함께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평상시 대로 새벽에 일어났고 운동을 하고 출근을 했다.

나의 자유를 어떻게 알았는지 회사업무는 금요일임에도 끝날 기미가 안 보였고 심지어 야근까지 했다.

미국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시작했던 미국 사절단은 캐나다 경유지에 잘 도착해서 둘째 고모네를 만났다고 했다.

호텔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일찍 공항에 갔지만

사절단을 기다린 건 Microsoft 보안 업데이트에따른 IT이슈 였고, 공항/운수관련된 시스템이 마비가 되었다.

다행히 사전에 체크인을 했다고 했지만... 그 뒤로 연락이 끊어졌다...

​​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퇴근 버스 안에서도 땀에 절어 몸이 무거웠지만 집에 가서도 와이프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애들 케어할 필요도 없었다.

미국에 잘 당도했는지 알 길이 없어 마음은 무거웠지만 나는 자유를 찾기로 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운동해 볼까?’ 즉흥적으로 집을 나서 운동한 게 언제인지..

10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했지만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호수 공원으로 향했다.

이 시간에 무리 지어 뛰어다니는 크루가 부러웠던 것도 이제는 옛 추억같이 느껴진다.

크루는 아니더라도 그 시간에 마음 편히 뛰면 좋겠네라고 했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아무런 제약도 부담도 눈치볼 것도 없이.


​두고간 선물

미국 가기 전까지 살림은 뒷전...

냉동실에 제육볶음 해먹는다고 꺼내놓은 고기는 나에게 바톤터치가 되었다.

“냉장실에 녹은 고기 있으니까. 제육볶음 해먹어”

저녁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가 고파 얼른 제육볶음 해먹어야지 했는데... 수육 고기였다.

결국 밤 열한시가 넘어 고기를 삶았다. 북적대던 집이 너무 조용하니 무섭운 생각도 들었다.

냉장고와 냉동실을 열어보니 와이프의 선물이 가득했다. 상해 가는 야채 오래된 김치..

냉동실에서 화석이 되어가는 케이크까지.. 음식 쓰레기 한 봉지를 가득 채워서 버리고 식기세척기를 돌렸다.

사절단이 떠난 뒤 집을 둘러보니 적막함과 어수선함이 오붓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 아이 방은 열자마자 그리움보다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지저분했고 집안을 둘러 보니 주말에 할 일 목록이 자동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수육 덕분에 부른 배는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즉흥적인 여흥으로 달린 덕분에 잠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여유​ 그리고 방황


24.7.20 2일차​

토요일 아침

자연스레 7시 반쯤 눈이 떠졌고 혹시 도착했는지 굼굼해서 폰을 열어보았는데 아직 연락이 없었다.

일단 샤워를 해야지 하는 순간 공항에 내렸고 캐리어가 엉망이 되어 지퍼가 터지고 난리라고 했다.

아마 같이 있었으면 챙긴다고 정신없었을 텐데 혼자 애들 챙겨가며 고생했을 와이프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보험사 항공사 보상을 챙겨야 한다며 카톡에 메모를 남겼다.

 

샤워를 하고 건조기에 옷을 빼고 이불을 돌리는데 세탁실이 너무 지저분해 보였다.

잔뜩 쌓인 바닥 깔판의 먼지를 분리해서 닦고 털어내고 분리수거하고 안방의 침대 구조도 바꾸었다.

소이방 문을 열어보았다. 답답한 마음이 밀려와 우선 방문을 닫아두고 나왔다.

오늘은 사촌 형 남중 이형의 아들인 일수를 보기로 했다.

지방에서 서울 본사에 올라왔다고 고모한테 들었는데 회사 계열사라서 회사 메신저로 몇 번 물어봤었는데 오늘은 흔쾌히 시간이 된다고 했다.

부산히 세탁실을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황일수. 어리숙하고 큰 덩치의 학생 같아 보였다. 그래도 차분한 큰 고모네 식구들 분위기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생각이 깊었다. 보통 그 나이에 아무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스스로 자기의 길을 잘 개척하고 있었다. 그 나이 시절 고군분투하며 앞이 보이지 않았던 터널속에서 지냈던 젊은 시절이 상기되었다.

집안의 어른들이 용돈을 쥐어주고 밥을사주며 챙겨주듯 얼굴 몇번 안본 친척을 만나 나도 어른이라 부를만한 나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고 나니 갈 곳을 잃었다. 자유는 있는데 할 게 없다니..

다들 나의 자유를 궁금해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유가 없었다. 자유의 빈부 격차로 인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자유를 가지고도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자유를 맞이할 준비는 하지 못했던거 같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엔 애매해서 대순이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주말이라 바쁜가 보다.

그래도 마음으로 정한 목적지인 미용실로 향한다. 가는 길에 스벅 멜론프라프치노를 두 잔 사서 갔다.

손님 머리 매직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경유지를 거처 집으로 향했다.



고향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 나의 자유를 궁금해 했던 시골에 사는 고향 친구 오승원한테 전화를 했다.

그냥 농담이고 놀릴 요량이었다.

“안 오냐?”

“6시 기차다.”

“미친놈 연락도 없이?”

“주소 찍어놓고 먼저 자고 있어라~”

6시 기차를 탄단다. 이놈은 늘 그렇다. 앞뒤가 안 맞고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

그래도 다년간의 경험으로 타격감은 덜하다.

서점을 잠시 들렀다가 집에 우선 도착해서 돌렸던 빨래를 마저 정리한다.

9시 40분 도착이라 하니 용산역으로 모시러 갔다.​

자이툰 용사 복장을 하고서 군장 가방을 메고 왔다. 간단한 요기 거리를 사서 집으로 왔다.

혈기. 이젠 그 기가 없다. 분명 젊은 때였다면 10시가 넘은 그 시간은 이제 어슬렁 어슬렁 정체 없이 주체 없이 여기저기 의미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자유를 대하는 자세도 나이가 먹으니 바뀌었다.

그저 집밖을 나돌며 술로 채우든 아니면 어디를 홀연히 떠나서 방랑을 하든 해야 마음이 채워지는듯 했는데

이제는 체력이 방전되지 않게 하는게 더 중요한것이 되었다.


막걸리 두병 피처 한 병을 사서 집으로 왔다.

와이프가 제육용 이라고 했던 고기는 수육고기인 덕에 지난밤 늦게까지 열심히 삶아놓은 수육을 먹었다.

막걸리 한 병만 딱 마시고 그놈은 누웠다. 역시 마이웨이다. 북한산을 갈 거란다.

불혹에 고혈압과 당뇨를 장착한 이 녀석은 막걸리 한 병만 먹는다고 하고선 정말 한 병을 먹더니 드러누웠다.

“난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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