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자동차 구경가자!”
자동차(自動車)라는 것이 온다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이 신기한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그 무리들 틈에 끼었다. 달구지만 보던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그 생김새를 한 마디씩 했으나,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내 머릿속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동산 언덕 너머에서 부옇게 흙먼지가 일더니 드디어 커다란 괴물(怪物)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키를 재듯 고개를 빼들고,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기뻐했다. 자동차가 섰는데 이를 가까이 보기 위해 우르르 몰려드는 바람에 이리 밀리고 저리 떠밀고 야단법석이었다. 말이나 소가 끌지도 않는데 잘 달린다는 둥, 지붕이 있다는 둥, 바퀴가 고무로 되어있다는 둥, 유리창이 있다는 둥....모두들 떠들썩했는데, 나에게 신기한 것은 무엇보다도 아기를 등에 업듯 뒤편에 커다란 숯불 화로를 업고 있는 것이었다. 쇠꼬챙이로 쑤시면 불똥이 튀는 모습이 신기하고 멋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에서 물을 끓이면 그 김(증기=蒸氣)의 힘으로 차가 달린다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않고 여기저기 만져보았다. 조수(助手)라는 사람이 자동차 앞쪽에서 두 번 꺾인 커다란 쇠막대기를 돌리니까 부르릉 부르릉 시동(始動)이 걸리고, 지붕 위로 뻗친 연통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천천히 움직였다. 몇 사람들을 태우고 자동차는 떠났는데, 핸들(handle)을 붙잡은 운전사(運轉士)가 대단한 영웅(英雄)처럼 보였다. 자동차 이야기는 한 동안 계속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가솔린(gasoline)이 아니라 증기(蒸氣) 힘으로 움직이는 목탄차(木炭車)였으리라.
이 자동차는 며칠 만에 한 번 씩 나타났다 가곤 했는데, 어느 날은 강진(康津)읍에 가신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오신다는 것이 아닌가! 이 꿈 같은 이야기를 듣고는 눈이 빠지도록 동산 너머 신작로(新作路)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이윽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자동차가 나타났다. 자동차가 멈추더니 유리창으로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자동차에서 내리는 아버지가 마치 임금님 같았다. 게다가 선물을 사오셨는데 어깨에 메는 총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니까 긴 끈에 매달린 코르크(Kork 도) 마개가 튕기어 나가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이 선물은 하늘을 난 듯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이 총으로 장다리 꽃밭에 가서 나비 사냥을 했다. 쏘는 대로 맞았다. 왜 그다지도 많은 나비 떼들을 토벌(討伐)했는지, 저승에 가서 나비 떼들에게 앙갚음을 톡톡히 당하거나, 불교식으로 말하면 사람이 아닌 나비로 환생(還生)하지나 않을까?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 아이들은 신하(臣下)들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 좀 쏴보자!”
“한번 만 쏴보자!”
나는 가끔 한 번씩 인심을 썼는데 얼마나 목과 어깨에 힘을 주었겠는가?
이 무렵에 비행기(飛行機)라는 것이 딱 한 번 하늘을 날아갔는데 참으로 신기해서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를 따라 발동선(發動船)이라는 것을 탔다. 고동 소리
를 울리며 바다 멀리서 섬을 감돌아 다가 왔는데, 선창에 대지 못 하고 나룻배를 타고 가서 갈아탔다. 돗자리가 깔려 있고, 긴 의자가 놓여 있는 방이 신기해서 누워도 보고 앉아도 보고..... 호기심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어느 곳을 들여다보니, 새까만 사람이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 후닥닥 물러나왔다. 아마도 기관실이었을 것이다. 먼 발치나마 이 발동선을 구경하느라고 사람들이 선창(船艙)가로 모여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개화(開化)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새로운 교통기관(交通機關)이 이 작은 포구(浦口)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