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꽃

새우타령

by 최연수

뭇별들 졸고 있는 이른 새벽

하늘 담장을 넘어,

이 땅에 벋어내려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임금님 承恩(승은)을 못 잊은

궁녀의 사랑의 기다림이

꽃으로 피었다지만.


아니야.

하나님께서 하늘 보좌를 떠나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듯이,

하나님의 사랑이 꽃으로 피어,

이 땅에 내려와 핀 것이지.


이 땅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이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다시 하늘로 올라가면 어쩌나?

우리도 사랑의 꽃으로 피어

하늘로 따라 올라가련다.




지난 날 우리 집 현관 앞에는 능소화(凌霄花) 나무가 있었다. 여름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주황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소화라는 궁녀가 하룻밤 승은(承恩)을 입고 賓(빈)이 되었건만, 그 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은 임금을 그리워하다가 그만 夭折(요절)했다고 한다. 그 넋이 꽃으로 피어, 연방 담장 너머 기웃거린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서는 최참판(崔參判) 댁의 명예를 상징하는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양반 집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화’라고도 불리는데, 常民(상민) 집에 심었다간 곤장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활짝 피었나보다 하면 싱싱한데도 이내 지는데, 흐트러짐 없이 통꽃채로 떨 어져, 그대로 주워다가 꽃병에 꽂기도 했다. 凌자는 ‘능가할 릉’이고, 霄자는 ‘하늘소’라 한다니까, ‘하늘꽃’이라는 별명이 제 격이다. 하늘과 땅 사이만큼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소양지간(霄壤之間), 혹은 소양지차(霄壤之差)· 소양지판(霄壤之判)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렇게 하늘나라 생명나무 강가에서나 피어야할 고결한 꽃이, 왜 지저분한 이 땅까지 벋어 내려와 피었을까?


문득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을 생각한다.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떠나 왜 낮고 천한 이 땅에 왔을까? 초신자 시절엔 누구나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 해봤을 문제일 것이다. 이 땅의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낮고 천한 몸을 입 고, 말 구유에서 탄생한 후 온갖 고초를 당하다가 마침내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신앙 고백을 한다. 그렇다면 능소화는 이 땅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왔을까?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꺼내자는 게 아니다. 딸내미가 마흔 나이가 되었는데도 미혼이다. 생일이 되면 여기저기 능소화가 화사하게 피어, 딸 이름 대로 ‘은진꽃’이라 부른지도 오래다. 그를 깍듯이 아끼며 사랑해줄 신랑이 행여나 오지나 않을까 초조하게, 소화처럼 담 너머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부모로서 할 일을 못한 것 같아 때로는 몹시 안타깝기도 한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16:1)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고,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전3:1) 라는 말로 핑계도 댄다. 하나님의 계획을 기다리며, 올해는 오히려 내가 능소화가 피어,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고 있다. 수필집 ‘길’에서 ‘올해도 하늘꽃이’를 썼던 때가 벌써 9년 전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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