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지하철 6호선 약수역에서 하차, 금호터널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계단으로 올라갔다. 80여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정자와 체력단련 시설이 나오고, 계속 90여 계단을 오르니 베드민턴 운동장이 나왔다. 5월인데도 한여름처럼 30℃의 기온. 자외선 주의보까지 내렸으나 바야흐로 녹음이 짙어 더위를 느끼지 않았다. 다만 계속되는 계단 때문에 노약자들에게는 힘든 산책길이다. 이른 봄철에는 개나리 꽃들로 장관을 이룬다는데, 지금은 다른 꽃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터널을 이룬 아까시아의 색 바랜 꽃잎들만 길 위에 흩어져 날린다.
30여 계단을 또 오르니 8각정. 간식으로 요기를 하면서 잠깐 쉬었다. 턱 아래 동네가 보이는 근린공원이지만, 운동하는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보일뿐, 산책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런 때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반갑고, 말을 건네고 싶다. 꽃들이라도 많으면 이야기를 나눌 텐데, 산새들마저 지저귀지 않으면 정말 쓸쓸할뻔 했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가로막고 있어 자연 경관을 해치고 있으나, 정상에는 탁 트인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북쪽을 바라보니 멀리 도봉산․북한산․북악산․인왕산이 눈에 들어오고, 왼쪽 끝자락으로 남산 서울타워와 자유센터․국립극장․동국대학교가 가까이 보인다. 하늘 쳐다볼 새도 없이 복닥거리며 사노라면, 삶의 누더기를 훌훌 벗어버린 채 이렇게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기회가 어찌 많으랴. 63빌딩 올라가서 돈 내고 보는 것보다는, 이곳자연의 품 안에서 조망하는 맛이 여간 쫄깃쫄깃한 게 아닌데.... 안내판에는 81m에 불과한 이 작은 돌산이 남산 자락이라고 씌어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왕들의 매(鷹) 사냥했던 곳이라 응봉산이라 한다는 것.
팔각정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오니 ‘남산길 서울 숲’이라는 푯말이 띄엄띄엄 서 있다. 푯말 따라 가는 곳마다 운동 시설과 쉼터가 마련되어 있어 참 편리하다. 군 부대를 지나 다시 응봉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남쪽 한강과 성수대교․동호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밤에 보는 이 곳 야경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사진가들이 많은 작품을 남기는 곳이라고. 인공암벽공원이 있다는데 그냥 돌아오면서, 올 때 지나쳤던 자연학습장만 들렀다. 작은 규모에 화초 종류도 많지 않고 그나마 다 진 후라 볼거리가 별로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들렀으나 공원 안내 팜프렛이 없다는 것. 평범한 근림공원이기 때문이리라. 공원을 내려오니 아닌게아니라 햇볕이 무척 따가웠다. 3호선 금호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