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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Jan 28. 2025

 지하철 9호선 노들역에서 내려 사육신공원 옹벽을 따라 걷다보면, 길가에 ‘충의공 긴문기 선생 사육신 현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77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문기(金文起)를 사육신으로 판정한 결의문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이 기록한 정사이지만, 추강집(秋江集)은 구전을 개인이 사찬(私纂)한 것이다. 그런데 추강집에는 사육신의 이름에 김문기가 누락되어 있었다. 이에 김씨 문중에서 이의를 제기하여, 바로 잡은 사실을 돌비에 새긴 것.

 수양대군이 불러 온 피바람. 그렇지만 세조의 피바람 뒤에 우리는 의를 알았다. 사육신이 죽지 않았던들 우리가 의를 알았겠는가? 

이것은 고난의 뜻이지 않을까? 고난 뒤에는 배울 것이 있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 중의 글이 행길가 옹벽에 새겨져 있다.

  정문에 들어서니 진입로가 잘 정비되어, 20여 년 전에 들렀던 것과는 아주 딴판이다. 어느 문중 선산 같았던 곳이었는데 넓은 공원으로 새로 꾸며진 것. 홍살문을 지나니 사충서원지(四忠書院址). 조선 후기 김창집 등 네 분의 선현이 육신의 제사를 모시고 학문을 연구하던 곳. 불이문을 지나니 사육신 사당이 있다. 의절사 왼쪽으로는 신도비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높이 2m 쯤 되는 6각기둥의 ‘사육신묘비’가 서있다. 빼곡히 새겨져 있는 전서(篆書)는 사육신을 기리는 내용이겠지만, 어려워 읽을 수 없구나.

 묘역에는 남쪽에서부터 박팽년․유응부․이 개․성삼문 네 신하의 무덤과, 조금 더 떨어진 북쪽으로 성삼문의 아버지 성 승의 무덤이 쓸쓸히 있다. 애당초에는 하위지․류성원의 무덤이 없었는데 그 후 들어섰으며, 김문기의 허묘도 새로 마련해놓았다고. 당시 새남터 형장에 처참하게 버려져 있는 시신을 김시습이 한밤중 몰래 수습하여 이곳에 안장했으며, 류성원은 자살을 하였는데도 사지가 찢긴 육시를 당했다고 한다. 

 ‘사육신공원 단종 충신역사관’은 문이 닫혀 있는데, 충효사상의 실천도장으로 쓰고 있다고. 체육 시설과 야생화 정원을 둘러보았다. 유난히 소나무들이 저렇게 시퍼런 것도 사육신의 충절을 닮은 것인가? 이곳 저곳에 고양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도 육신의 충절을 기리며 참배하러 왔을까? 그렇다면 묘역(墓域)이 묘역(猫域)이 된 셈인데, 근처에 수산시장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차리고 나도 모르게 실소. 그리고 드문드문 학생들이 눈에 띄는데, 그들도 충효사상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또한 근처에 학원이 밀집되어 있어 점심 먹으러 온 것이다.

 마지막 조망명소에서 여의도와 한강을 바라다보았다. 건너편 멀리 새남터 형장이 눈에 들어왔다. 피 비린내가 강바람에 실려오는 것처럼 몸이 으스스 떨렸다. 이렇게 70여 명의 충신들을 참살한 병자원옥(丙子冤獄)이후, 천주교도들을 참살했던 병인박해(丙寅迫害)와 더불어 원한이 서린 곳.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란 이와 같이 피 냄새를 맡으며 힘을 얻고, 피를 마셔야 살찌는 드라큐라 속성이 있는 것인가? 때마침 리비아의 40여 년간의 철권 통치자 카다피가 시민군에게 무참하게 사살 당했다. 조카 단종을 내쫓아 죽이고 그의 충신들을 무참히 죽인 수양대군(세조)의 권력욕과 무엇이 다른가? 유다나라의 르호보암왕이 부왕 솔로몬왕과 전혀 다른 얼굴로 독재를 한 것과 같이, 이렇게 조선 세조는 부왕 세종과는 전혀 다른 폭군이었던 게 입맛이 쓰다.

홉브스 “인간은 인간에 대해선 이리요 늑대야. 인간의 본성은 만민의 만민에 대한          투쟁이거든.”

니 체 “맞아, 의지는 무엇보다도 큰 힘을 추구하며, 부단히 성장․강화하려는 의지         지. 그걸 권력의지라고 해.”

쇼펜하워 “아냐, 의지는 맹목적인 것인데....”

니 체 “천만에, 모든 생물체는 생존하기 위해 힘이 필요하지. 모든 생명의 본성은          바로 권력의지라니까. 왜냐,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말이야, 플라         톤 자네는 정치란 뭐라 했더라....”

플라톤 “정치란 윤리지 뭐.”

마키야벨리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말게. 르네상스가 신에게서 인간을 해방시킨          것 처럼, 윤리에서 정치를 분리해야 하는 거야. 악덕처럼 보이더라도 번영을         위해서라면 행해야 하고, 미덕처럼 보이는 것은 실행에 옮기면 파멸로 이어         질 수 있어.”

아리스토텔레스 “그런 말 때문에 한국의 정치판이 저런 게 아냐? 난 스승이신 플라         톤의 말이 옳다고 봐.”

마키야벨리 “내가 ‘군주론’을 쓴 건, 주위의 강대국에 둘러싸인 피렌체공화국의          관료로써, 생존과 번영을 모색하면서 철저한 현실의 정치․힘의 정치를 주         장한 정치이론이었는데, 한국 정치인들이 아전인수식으로 굴절시킨 거야.”

니 체 “참, 자네 군주의 자질을 몇 가지로 들었지? ”

마키야벨리 “응, 자비심․신의․인정․신앙심․공정이지.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은          여기에서 단 한 가지도 해당 되지 않은 것 같아.”

 벤치에 앉아 잠깐 쉬는데 이런 대화가 들려온 것 같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써 정치판은 번철처럼 달궈져 있다. 정치인이란 ‘강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한다는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르시쵸프의 말과 같은 권모술수는 차라리 애교가 있다. 선거철이 되면 머리를 조아리며 주인이 되기 위해 이렇게 하인 시늉을 하는 것도 낯 간지러운데,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살벌한 저 약육강식의 살벌한 밀림의 법칙은, 세조의 병자원옥을 떠올리게 해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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