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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산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Jan 28. 2025

 지하철 9호선에서 환승 5호선 우장산역에서 내렸다. 공원 입구까지 20여분 걸었다. 맑은 하늘을 이고 걸은 탓인지 발걸음은 가벼웠다. 올해 들어 먼 공원 나들이는 두 번째인 셈. 눈 앞에 펼쳐지는 신록에서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고 한 수필가 이양하의 ‘신록 예찬’이 머리에 떠올랐다. 마을버스가 오가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라가니 강서구민회관. 바로 앞쪽에 작은 터널 위로 육교가 놓여 있다. 오른쪽으로 70여 계단을 오르니 공항정이 있고, 쉬고 있는 마을 어르신네들 또한  신록을 말없이 예찬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옛 깃발들이 나부끼는 국궁장에는, 멀리 세 개의 과녁이 화살을 기다리고 있다.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했지. 나도 얼마나 많은 화살이 표적에서 벗어났던가? 

 오른쪽으로 트인 길을 따라 나가니 산책길. 울타리처럼 늘어선 그 유명한 개나리와 진달래 꽃을 보지 못한 게 퍽 아쉬웠지만, 군락지를 이룬 자연생 쪽동백나무들의 넓적한 이파리가 시원하였다. 때죽나무 속 낙엽활엽이라는데, 곧 보석같은 오밀조밀한 꽃들이 필 거란다.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와 유열과 평화’가 있다는 ‘신록 예찬’구절이 자꾸만 입속에서 구슬처럼 굴러다닌다. 문득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 게시판이 나타났다. 이어 김기림․천상병․서정주․박목월의 시들이 싱그러운 산소와 피톤치드를 내뿜어 주어, 이윽고 ‘신록 예찬’을 가슴 깊숙이 들이쉬었다.

 특히 안도현의 시 ‘가난하다는 것’을 되새김하면서 걸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1)의 성경을 연상하게 한다. 반생을 가난으로 이골난 내가 안도현처럼 설마 ‘가난 예찬’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쥐는 게 없었기에 하늘의 밧줄을 붙잡을 수 있었고, 마음이 텅 비어 있었기에 말씀을 채우려 했던 것이 아닌가?

 가파른 산길이 아니기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아낙네들도 가끔 눈에 띈다. 산새들은 이리저리 날며 귀엽다고 재잘거리는데, 아기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마라톤 코오스라 하지만, 계절의 여왕 5월의 대관식에 참석한 산책객들만 마음의 축하 화환을 한 아름씩 안고 오르내린다. 100m도 채 되지 않은 검두산 정상은, 느티나무와 잣나무로 둘러싸인 광장에 운동 기구들이 즐비하다. 정자에서 쉬면서 쑥떡으로 요기를 하였다. 공원 안내판에는 양쪽 원당산과 검두산을 합쳐서 우장산이라 이르는데, 양천 현감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서, 세 번째에는 반드시 비가 내렸으므로 우장을 준비하라는 뜻에서 우장산이 되었노라고 하였다. 내려올 때는 일부러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오솔길로 내려왔다. 

 터널 위로 놓인 다리를 지나 맞은편 원당산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아스콘 포장재 길이다. 이젠 철쭉들도 거의 지고, 숲길 양쪽에는 옥잠화․돌단풍․수호초들이 제 철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 류시화․조지훈․김영랑․어용대․윤동주․김춘수의 시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정상에는 ‘새마을 만남의 장소’가 마련되어 있고, 한가운데에 9개도와 3 특별시․직할시를 뜻하는 둥근 계단 위로 새마을지도자탑이 우뚝 서있다. 종북 세력들은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미화하는 반면, 군사정권 박정희대통령의 치적이라 해서 새마을운동을 비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긍지를 온 국민에게 심어주었던 역사를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그리고 지금도 개발도상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삼아 개발에 박차를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우장산 조각의 거리라고 쓰인 돌비가 세워져있다. 조남조․이해인 여러분의 시비와 화초들과 조각품들이 하머니를 이루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피로를 단번에 날려보냈다. ‘산’(김도훈 작)을 비롯하여, 여남은 분 조각가들의 개성이 모두 잘 나타나 있는데, 특히 ‘구슬치기’(이경우 작)는 어렸을 적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며, ‘사랑’(노주환 작)은 단순한 선과 부드러운 곡면에서, 끈끈하고 진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름동산’(김경화 작)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나무와 결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다가가서 만져보고 싶은 친근감을 주었다. 산책하러 왔는데, 시집 한 권 읽고, 조각 감상하러 온 셈이다. 한편 형제우애의 귀감이 되었던 고려 말 문신 이조년의 ‘투금탄’ 전설과 함께 새겨진, 그 유명한 고시조 ‘다정가’도 오랜만에 다시 읊조렸다.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데

       一枝春心을 子規야 알랴마는

       多情도 病인양하여 잠못 들어 하노라.

 그리고 마지막 내리막 길에 세워진 서산대사의 글을 되뇌이며, 오늘 하루 뿐만 아니라, 칠십 평생 걸어온 내 여정의 발자취도 조용히 돌아보았다. 뒤 따라오는 자손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게 걸음 발자취를 남겨 놓고서, 똑바로 걷기를 바라고 있지나 않은지...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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