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쉬고 생각하고
원래 금강산에 있었다고. 그런데 조선 왕조가 정도를 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 결정을 못한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가 남산이 되고자 한양으로 왔다. 그러나 도착하고 보니 다른 산이 자리하고 있어 돌아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떠나온 금강산으로 차마 되돌아갈 수는 없어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한양을 등지고 있다나.
불현듯 등산을 하고 싶어 불암산 둘레길을 가기로.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내려 앞을 바라보니, 두 오뉘 봉우리가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산뜻하게 우뚝 솟아있다. 거대한 암석과 울창한 숲들이 어우러져 우선 외관이 아름답다. 삼각자(제1봉우리 507m)와 각도기(제2봉우리 420m)를 나란히 세워 놓은 듯한 두 봉우리를 매끈한 능선이 리본처럼 묶고 있다. 중(僧)의 모자를 쓴 부처의 형상이라 불암산이라고 한다는데 부처의 형상은 아니다. 다만 주변인들이 오래 전부터 정상을 ‘삿갓봉’이라는 해왔는데, 여승의 모자인 송낙 곧 송라립(松蘿笠-소나무 겨우살이로 엮음) 같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덕암초등학교 후문 쪽 계곡으로 들어섰다. 초입에는 철제 난간과 돌 층계가 지그자그로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지만, 30〜40도의 비탈이 계속 이어져 예사롭지 않았다. 경수사와 천보사 갈림길에서 천보사 쪽으로. 위를 쳐다보니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새파랗다. 아직은 한낮의 햇볕이 따갑지만 숲속은 서늘할 가을. 계곡을 끼고 오르는데 힘차게 쏟아지는 용의 초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새 소리와 어울린다면 금상첨화인데...계곡에는 출입 금지의 푯말. 서울에 이렇게 자연적인 유곡과 청정 옥수의 용소가 있다니, 내가 과문 했구나!
하늘 아래 가장 보배로운 절이라는 천보사. 거대한 자연석에 많은 불보살님들이 천연적으로 모셔져 있는 도장(道場)이라고. 절을 지나고도 골짜기는 줄곳 이어졌다. 오르막 내리막길이 번갈아 나 있고, 때로는 양념으로 반반한 길을 맛보기 마련인데, 여긴 온통 크레센토의 깔딱고개다. 폭포 약수터에서 잠깐 쉬었다. 계곡에 홀리어 여기까진 힘든 줄 모르게 올라왔다. 등산은 앞길을 가늠 하면서 걸어야 하는데, 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낭떠러지뿐. 10년 전 지리산 등반 때의 사고가 생각났다. 이제 정상까지 1.2Km라는데 평지가 아니니 무엇인들 종잡을 수 있을까?
매몰차게 층계도 난간도 끊어진지 오래다. 돌과 뿌리가 곧 층계이고, 나뭇가지가 난간이다. 반팔 셔츠, 운동화와 손가방. 이게 등산 차림인가? 잡석․잡목․잡초들도 웃었겠지. 내친걸음이니 정상은 정복해야지...헉헉대며 오르는데 길이 따로 있나 걸으면 길이지. 아, 그런데 그게 아니다. 육중한 바위 잔등이가 곧 길인 걸. 코끼리 등마냥 반들반들하게 닳은 게 불안하지만 용쓰며 기어올랐다. 2시간 만이다. 뜻밖에 한 사람이 쉬고 있는 게 아닌가? 반가웠다. 50대 후반 남자인데 나를 민망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가장 힘든 코스인데 등산 장비 없이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올라왔느냐고....바로 건너편에 북한산과 도봉산․수락산이 자태를 자랑한다. 발아래는 숲에 가려져 있고, 멀리 보이는 서울은 온통 흰색 아파트 숲. 조망에 쾌재를 부르기는 잠시.
고개를 꺾어 쳐다보니 머리 위로 태극기가 가물거린다. 반갑다기보다 오히려 주눅이 들었다. 높아서가 아니고 너무 가파른 암벽에 기가 질렸다. 그 분도 앞길이 더 험난하다는 것. 떡으로 요기를 한 후, 아쉬웠으나 암벽 타기 만용은 접기로. 올라왔던 바위로 내려오는데 아슬아슬하다. 살얼음 위를 걷는 일이 차라리 쉽지 않을까? 내려오다가 잠깐 쉬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용 틀임 모습의 나무 뿌리! 여의주를 물리면 훌륭한 관상용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용의 초리, 용소, 용 틀임이다. 힘든 것도 잠시, 보배를 주운 듯 기념으로 가져오기로.
계곡이 옷자락을 붙든 채 영 놓지를 않는다. 아예 계곡으로 끌려 내려왔다. 목 마른 노루가 낙원에 온 듯. 그러나 내려올수록 너비가 넓어지면서 돌과 바위들이 커지는 것이다. 갑자기 폭포가 되기도 하고, 가파른 암벽이 되기도 하고...심지어 흐름이 느린 곳에는 물이끼마저 끼며, 붙잡을 만한 나무도 가까이 없다. 한 발이라도 헛디디면 추락이다! 엉덩이를 붙인 채 뭉개다시피 안간힘을 쓰는데, 다리가 후들거리며 입술이 바짝 말랐다. 왔던 바위 위로 다시 오를 수는 없고, 계곡 옆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 그러나 이곳도 미로의 정글이다. 가파른 데다가 관목들과 지난 태풍에 꺾인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이 건방진 침입자의 앞길을 턱턱 가로막는다. 덩굴손마냥 연약한 맨손의 개척자 돈키호테! 드디어 풍화작용으로 바스러진 화강암 모래에 미끌어져, 가시와 나뭇가지에 여기저기 긁혀 쓰라리고....
설마 사고야 나랴. 풍랑을 만난 배처럼 가져간 소지품을 버렸다. 그리고 기념품은 굴려 내리기로. 아무도 없는 이런 곳에서, 어두워지거나 변덕스런 날씨로 짙은 안개가 끼고, 세찬 비바람이 친다면, 혼자 조난당할 수도 있겠다. 가까스로 오솔길을 찾았다. 구세주를 만난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용천 약수터에 오니까 무려 4 시간만이다. 무리였다. 오를 때와는 전혀 다른 코스이다. 가족들이 오늘의 모험담을 들으면 얼마나 입방아를 찧을까? 그래서 불암산이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듣고 있겠지. ‘산 앞에서 겸손하라!’ 이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인가? ‘아는 길도 물어 가렸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이런 속담과 격언은 허공에 메달아 놓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