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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샛강공원

걷고 쉬고 생각하고

by 최연수

지하철 9호선 샛강역에서 곧장 계단을 통해 샛강으로 내려갔다. 여의도나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 먼발치로 보고만 지나쳤던 습지대. 어렸을 적에 심심하면 미꾸라지나 올챙이․달팽이를 잡으러 이런 습지에 가곤 하였다. 흙을 파면 지렁이들이 꾸물거리고, 물 속에 발을 담그면 거머리가 붙기 일쑤며, 때로는 또아리치고 있는 뱀을 보고 기겁해서 도망치기도 하였지. 거미줄이나 도꼬마리․도깨비바늘이 귀찮게 옷에 달라붙고, 억센 풀 이파리에 손발이 긁히고 베이며...그래서 징그럽다고 침을 뱉으며, 더럽다고 오줌을 싸갈기기도 하였다. 차라리 메우어 논밭을 일구거나 도랑을 내어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할 일이지, 왜 시궁창이 되도록 그대로 버려두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런 습지대를 그리워하며 지금 거닐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물꼬를 트고 길을 닦으며, 나무데크 다리를 놓아 거리낌이나 머뭇거림 없이 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갈대와 억새가 키를 재고, 수크렁․까마중․망초를 비롯한 이름 모른 잡초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한강 본류의 물을 끌어들여 만든 이 생태수로는 1〜2등급 정도라고 한다. 생태연못 위의 지그재그 나무데크 다리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는 일이 아주 편리하고 안전하다. 생이가래․마름․개구리밥 따위의 물풀은 흔할 법한데 안 보인다. 수상 스키를 즐기는 소금쟁이만 눈에 띌뿐, 뽕 뽕 방귀를 뀌는 물방개, 꼬리를 묶어 줄다리기 시켰던 게아재비, 빙글뱅글 맴도는 물매암이 따위도 보지 못했다. 아직은 뿌리내리고 자리 잡기에는 이른 것일까?

안내판에 갈대 습지의 수질 정화 과정을 자상하게 설명해 놓았다. 곧 오염된 물이 유입해도 갈대에 의해서 흐름이 느려지면, 물리적 침전 효과를 높인다. 오염물이 갈대뿌리와 미생물에 의해서 흡수․흡착되고, 유기물 및 침전물에 의해서 분해되면, 자연적인 미생물의 성장에 적합한 환경으로 바뀐다. 이렇게 해서 미생물 군집을 위한 거대한 배양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 시간을 걸으니 계류폭포가 나타났다. 여의도역에서 내보낸 물이 이곳으로 흘러든 것이다. 이 1급수가 11℃를 유지하면 각종 조류와 어류가 서식하는데 적합한 환경이 된다고 한다. 더 하류로 내려가면 오리못이 있어,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가 번식한다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강변으로는 길게 뻗은 자전거 길과 보행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가로수 그늘 아래로 제비같이 달리는 자전거 부대들이 멋있고, 삼삼오오 희희낙락 산책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아름답다. 버들 숲이 따로 있다지만, 생태 수로․연못 근처에는 키 작은 수양버들 몇 그루만 덩그렇게 서있을 뿐, 그늘을 드리우는 큰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생태학적으로 식물의 삶은 빛에 의존하지 않는가? 생태계 안에서 교목(喬木)이 햇빛을 독점하지 않아야, 하층의 초본과 다른 목본 식물이 잘 자라게 되고, 이렇게 해서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자라면 이를 먹이로 하는 다양한 동물도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생태적 천이(遷移)는 방향성이 있고 예측 가능성이 있는 법.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게 되면 생물 상호간 경쟁 및 협력으로 생태계는 안정된다. 이와같이 생물의 다양성이 최고조에 이르러, 생물들의 먹이 구조도 복잡하게 얽혀짐으로, 출현 종이 증가․풍부하게 된다는 것이 즉 생태계의 ‘공생(共生) 발전’이 아닌가?

산책하는 젊은이들이 단정한 넥타이 차림인 것으로 보아, 점심 시간을 이용 해서 잠깐 바람 쐬러 나온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의 사원일 것이다. 요즘 대기업은 날로 번영하나, 중소기업이나 협력업체들은 고전하고 있다고 야단이다. 곧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고사 직전에 있다는 비명이다. 따뜻한 4.0 자본주의가 이슈로 되어있는 분위기에서,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크지만, 말 뿐이라는 하소연이다. 정부가 경제적 이득을 최우선 목표로 삼지 않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포용할 것을 목표로 한다면, 생태계의 ‘공생과 발전’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철딱서니 없게 침 뱉고 오줌 싸갈기던 그 습지대가, 우리의 삶의 터전이란 걸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개발이 소득을 높이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며, 삶의 질을 높여 행복지수가 커지리라 믿었지 않은가? 그러나 습지대가 사라지고 많은 생물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난개발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위협 받게 되자, 뒤 늦게나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생태계의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개발과 환경을 잘 조화시키는 연구와 노력이 참으로 절실하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다보면 프란츠 알트의 ‘생태주의자 예수’를 떠올리곤 한다. 우주 공간에 우리의 지구는 다른 별 하나를 만난다. 그 별이 지구에게 묻는다.

“너 잘 지내니?”

우리의 별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가 못해. 나도 호모 사피엔스를 태우고 다니거든”

그러자 그 낯선 별이 지구를 이렇게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까짓것 신경 쓰지마. 금방 사라질 거야”

이 대화는 인류에 대한 준엄한 경고요, 우리들 스스로의 자성의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해오라기숲에는 가보지 못하고, 여의못 보행교에서 돌아섰다. 람사르 습지대로 수 만 마리의 철새 떼들이 공중 곡예를 하며 날아드는 환상을 보며 떠나왔다. 습지대야, 그 옛날 널 천더기로 여겼던 것 참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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