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멧새 1 07화

송백

by 최연수

피비린내 나는

모스크바의 눈보라.

무궁화 핀 내 조국에

마구 휘몰아쳐 왔소.


땅덩이가 얼고

공기까지 얼어붙었어도,

굳굳하게 솟아 있는

소나무와 동백.


찬 바람에 꺾이지 않는

새파란 목숨.

찬 눈에 시들지 않는

장엄한 모습.


백두산 정기가

땅속 깊이 뻗어있고,

압록강 혈맥이

푸른 잎 속으로 이어진

오! 소나무여,동백이여.


* 시집 ‘松柏’에서


외가에서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와서 은신했다. 그 울분(鬱憤)을 시와 만화(漫畵)로 달래었다. 명함(名銜)만한 종이 쪽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붓 가는대로 쓴 시가 꽤 많았다. 물론 아무도 몰래 혼자 쓴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께 들통이 나 호된 야단을 맞고 불태웠다. 그러나 내 분신(分身)을 차마 분신(焚身)시킬 수 없어, 몰래 빼돌린 시들은 감나무 아래 깨진 기왓장 밑에서 숨을 죽이며 3개월을 버티었다.

100일 만에 반격․수복이 되어 폐허(廢墟)가 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한 사람의 희생(犧牲)도 없이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이 사선(死線)을 넘어 살아왔다. 국군과 UN군은 북진을 계속하여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1.4 후퇴를 하게 되었다. 전황(戰況)은 예측할 수 없이 혼미(昏迷) 했다. 환희와 감격은 잠시 뿐,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었다.

눈이 산야(山野)에 쌓이고, 삭풍(朔風)이 매서웠다. 그러나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한 소나무와 동백(冬柏)은 더욱 푸르렀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의 기백(氣魄)을 뽐내며, 격려(激勵)를 해주고 있었다.

적치하(敵治下)에서 썼던 시에게 햇볕을 쬐어줄 겸, 이 무렵에 썼던 시를 한 데 모아 조그만 시집 ‘松柏’을 엮었다. 습작(習作) 수준에 불과한 저항시(抵抗詩)지만 귀중한 작품인데, 그만 소실(燒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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