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도

by 희도

23.5도


-아줌마 꽃이 차말로 이쁘요 봄인갑소


매미가 여름 소리를 알릴 때

어머님은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인명은 재천이라 어찌 안 되겄지만서도

나 인자 그만 가고 잡소

아그들 아부지 옆으로 그만 가고 잡소


23.5도 기울어진 간극

기어이 문드러져 내리는 어둠에 나는 앉는다

내 어린 날 할아버지 손을 놔버린 할머니는

끝내 기억을 잃고 헤맸다

얌전한 치매라며 웃음을 거두지 않던 아버지

잘 포장된 웃음으로

공들여 조각해 놓은 여자들은 살아서 느물거렸다

등줄기를 지나는 푸른 불꽃을 섧게도 삼키는

내 어미는 모질었다

시어미가 끝까지 잡고 놔주질 않는다며

거두는 눈길조차 차가웠다

할머니는 기둥에 묶인 채 떠돌아 다니는 외로운 넋이었다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던

마당의 나무들을 안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강아지 메리는 반딧불을 쫓아다녔다


할머닌 자꾸 기억을 찾아갔고 나는 자꾸 할머닐 잃었다

담장 위로 접시꽃이 붉던 유월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던 들판에서 나는

할머니에게서 꽃반지 하나를 얻어 찼다

내 손 부여잡고 다독이면서

이유도 모름서 엄한 말 하믄서

환한 미소 짓던 할머니에게 나는

꽃시계 하나 만들어 채워주면서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도 징그럽지? 산다는 것이

왜 이러고 오래 살아…

여기 할머지 자식 없어. 그니까 인제 그만 가

나같음 진즉 그만 살고 싶겄다

이미 자식들이 아니고 인간들이 아니여

모르겠어? 여기 할머니 자리 없응게 할아부지한테 가!

편하게


입찬소리에 떨어지는 꽃이파리

알면서도 모른게 들어도 모른게

눈물짓던 내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웃었다

그날 그 새벽길 내 손 꼭 잡고 또, 웃었다


할머니에게 꽃시계 채워주며 가슴 미어지던 나는

어머님의 담담한 고백에 가슴 찢어지는 나는

그때처럼 지금, 슬픔에 슬픔이 기우는 나는

할머니와 어머님의 세월 속 23.5도 간극에서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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