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kuromi Jul 16. 2023

유난히 지치는 그런 날이 있잖아.

서울에서의 삶이 지쳤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스트레스 받는 나를 알아차리는 날.


힘듬이, 힘겨움이 기본값이 된 일상을 살다보면

별 생각이 없다가도 반복되는 내 몸과 마음의 이상 신호들에 각성하게 되는 그런 날.


나의 경우

스트레스를 받으면

군것질을 하기 시작하며 폭식으로 욕구를 채우기 시작한다. 먹는 것으로라도 즐거움을 채워보려는 무의식이 급격하게 살을 찌우고, 퇴근 후 무거워진 몸으로 무기력에 빠져 잠만 자며 잠이 는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거나 불현듯 힘들 때마다 의지하곤 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거나 감정의 폭풍을 겪는다. 그러다 꼼짝없이 일에 갇히면 곧 두통이 찾아와 타이레놀을 찾는 루틴이다.


스트레스의 사이클은

루틴이라 부를만큼 비슷한 형태로 나를 찾아왔지만

속수무책 당할 뿐 그저 천천히 지쳐갈 뿐이었다.


한 번은

현생이 지쳐오니 서울에서의 삶도 지치게 느껴졌다.

이사 한 번 가보지 않은 채 줄곧 서울살이를 해왔던 나는 처음으로 서울의 빠름이, 바쁨이, 촘촘한 인프라가 질렸다. 오래 머문 곳에 상처가 있다 했던가. 모든 힘듬이 서울 때문이라 치부하며 막연히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다가 자연으로, 지방으로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나의 이상한 고집이 피어났다.


그럴 때 즈음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그 사이의 날씨는 퇴근 후의 나를 위로해주었고,

햇빛의 소중함을,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은 나를 따릉이로 이끌었다.

대학생 때도 학교 근처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던 나인데 내 출퇴근 일상에 따릉이를 떠올린 건 꽤나 뿌듯한 일이 되었다. 한강 그리고 따릉이는 한동안 퇴근 후 나의 리틀 포레스트가 되어 주었다.


병원에서 집까지

약 1시간 거리를 자전거 타면

처음엔 오르막길에서 내 허벅지의 한계를 느끼며 열심히 페달을 굴려보다가

내리막길에서 쳐다 본 탁트인 파란 하늘과 강의 윤슬에 어느새 몸도 마음도 긴장이 풀리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햇살 속에서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한강을 따라 굴려보는 따릉이는 낭만 그 자체다.

사람들에 치이며

지하철에 실려오듯 출퇴근하던 내 일상은

비로소 자연 한 켠이 주는 여유와 감각에 생기가 돋았다.

'지방에 살면 일도 널널하게 하면서 스트레스도 덜 받고, 이렇게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마음껏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공상해본다.


그렇게 나는 따릉이 정기권을 결제했다.

참 예쁜 여의도 한강

나는 야무지게 간식도 싸서 따릉이 라이프를 즐겨본다.

간식 먹으려고 따릉이 타는 이런 삶이 썩 괜찮았다.

모닝빵 + 딸기잼 + 삶은 계란 조합 최고..

그리고

한낮 오후, 생각보다 사람들과 따릉이로 붐비는 한강에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 앞 따릉이 대여소에 도착하면

때로 자전거 주차칸이 다 차서 맞은편에

질서 있게 주차해놓은 따릉이 풍경에

인류애를 충전하며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자전거를 반납하면

핸드폰에 울리는 '하늘이 더 깨끗해졌어요!' 알림, 구석구석 온몸에 맺혀있는 나의 땀. 덤으로 기미와 주근깨를 얻기도 했지만,,,

괜히 뭐라도 해낸 듯 기분좋은 하루의 마무리다.


유난히 지치는 그런 날에

퇴근 후 한강을 따라 노래를 들으며 따릉이 탈 생각에 힘을 내보곤 했던 23년 봄에서 여름 그 사이의 날들.

장마 때문에 한동안 따릉이를 타지 못해 아쉬운 지금 괜히 끄적여보았다.



서울.

2022년의 봄에서 여름 어느 날 내가 남겼던 서울의 기록이다.


지금과는 또 다른 고민과 생각으로 마주했던 서울이라 글의 느낌은 다르지만

분명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이 일어나는 서울에 대한 내 애정을

'어디'에 있든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찾아내고자 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나의 리틀 포레스트가

훗날 전원일기의 초석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삶의 치열함도 서울이라면, 도심 속 한강의 아름다움도 급행 대신 택하는 따릉이와 자연 한 켠의 여유도 모두 서울이었다. 대비되는 면모에 서울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는 것을 느껴본다.

아, 나는 아직 서울을 떠나면 안되겠다.

작가의 이전글 절대 하지 않을 것들의 목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