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부르는 순간

제주여행

by 바람처럼

제주를 걷다, 나를 만나다.

종종대던 일상을 벗어나, 이제는 느긋하게 섬을 걷는다.

걷는 동안, 풍경은 말을 걸고 바람은 감정을 건드리고 길 위에서 문득, 잊고 있던 나를 만난다. 이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감정과 사유의 기록이다. 제주를 걷는 동안, 나는 조금 더 나다워졌다.


1. 여행을 부르는 순간


신문을 펼치자, 낯익은 웃음이 보였다.

책으로 벽이며 천장을 가득 채운 방,

그 한가운데 앉아 여전히 환한 얼굴.

사 년 전,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 마음에,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명치끝 어딘가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마치 오래된 감정의 창이 덜컥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열 평 남짓한 사무실 안,

똑같이 빗소리를 들으며 일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태풍 피해 소식을 시간마다 전했고,

나는 그 와중에 생전 처음 몇 줄의 글을 보냈다.


김홍신 작가와 함께하는 일박이일 제주 여행에 초대합니다.

커피회사의 문예지였던가.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응모했다.


며칠 뒤, 참가 확정이라는 연락이 왔다.

꿈같았다.

그런데 막상 사실을 깨닫자,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오십 평생, 여행 한 번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었다.

모임에도, 외출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들 학교 행사조차 빠질 만큼,

나는 줄곧 일 속에 갇혀 지내던 사람이었다.


남편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남편은 영업과 현장을,

나는 사무와 계산을 맡았다.

이십여 평 가게와 이층 살림집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종종거리며 오갔다.


휴일이나 연휴엔 오히려 더 바빴고,

평일은 납품과 현장 정산으로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여행은커녕, 그럴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옷도, 가방도, 마음도.


그런데도, 제주도에 간다고 말하자

가족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얼떨떨한 채, 주섬주섬 짐을 꾸려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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