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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Oct 07. 2023

우리 함께 성공하면 안 되는 걸까

대치동에서 친구란 미묘한 존재였다. 같이 다니면서도 옆에 바로 보이는 경쟁자였다. 학교에 가도, 학원에 가도, 우리는 각자 숫자 하나로 표현될 수 있었다. 그 숫자는 매번 바뀌었다. 특히 학원에서는 숫자의 변화가 빨랐다. 가령 외고 입시를 준비할 때, 영어 학원 데스크 맞은편에 있는 게시판에서 우리는 매주 토요일에 이름과 등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주에는 20등이다가, 40등이 되기도 했다. 내가 7등을 했던 날에는 친구의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린이가 이번에 7등을 했다면서요?”하며 말이다. 우리에게 매겨진 숫자는 우리만 아는 게 아니었다. 그 숫자는 곧 평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안심할 수 없었다. 이건 일종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그 변화무쌍한 숫자들이 나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더 높은 숫자를 위해 쟁탈전을 벌이는 상대는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같은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 같은 반 아이들. 그중에는 나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쟁탈전 속에서는 친구조차도 나의 경쟁 상대였다. 내 앞에 한 명을 넘어뜨리면, 나는 한 발 더 앞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가 잘 되길 바라면서도, 걔가 날 넘어서면 분했다. 그냥 딱 나만큼만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동등한 숫자를 나눠가질 순 없었다. 누군가는 더 높은 숫자를, 누군가는 더 낮은 숫자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은 제로섬 게임 같았다. 누군가의 성공이 나의 아픔이 되곤 했다.




그러니까, 항상 그게 문제였다. 모두가 나의 성과를 안다는 것. 외고 입시 결과 발표가 날 때, 학생들은 교실에 있는 컴퓨터로 결과를 확인했다. 한 명씩 자신의 결과를 확인하며 울거나 웃었다. 그리고 친구들 반으로 우르르 달려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했다. D외고 결과가 나오는 날, 나는 D외고를 지원했던 친구들 반에 찾아갔다. 나랑 친한 두 친구 모두 합격을 했다. 한 친구는 덤덤하게 이야기하며 웃었고, 다른 친구는 주저앉으며 펑펑 울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순수하게 축하해 줄 수 있었다. 아직 내가 지원한 H외고 발표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H외고에 합격하지 못했다. 나는 교실에서 결과를 확인하기 무서워서 따로 집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학원을 가려다가 길가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누가 H외고에 합격했는지 소문이 쫙 돌았다. 그와 동시에 누가 합격하지 못했는지도 모두 다 알게 되었다. 교실에는 밝고 어두운 표정의 아이들이 뒤섞여 앉아있었다. 나는 학교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뒤이어 들려온 친구의 E외고 합격 소식에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없었다. 앞에서는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줬지만, 속으로는 ‘친구들은 다 합격하는데 왜 나는 안 될까?’하는 절망감이 피어올랐다.


누가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든, 시간은 흘렀다. 졸업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께서 A4 용지에 롤링 페이퍼를 작성하라고 했다. 오른쪽 상단에 이름을 적고, 종이를 하나씩 돌려가며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적는 방식이었다. 내심 아이들이 어떤 말을 적어줄지 기대가 됐다. 롤링페이퍼를 돌려받았을 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들이 적혔는지 살펴보았다. 대체로 친한 아이들은 단정한 글씨로 다정한 작별인사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ㅎㅇ’ 혹은 ‘ㅅㄱ’라는 말을 적어놓기도 했다. 누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어떤 아이는 성경 구절을 길게 적어놓았다. 다른 아이가 그 구절에 화살표를 하고는 ‘이거 누구니;;’라고 쓰고, 어떤 아이는 ‘최고’라고 적어놓은 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앞면을 다 보고 나니, 이름을 써놓은 곳 너머로 희미하게 파란색 글씨가 보였다. 뒷장에 누가 뭔가를 써놓은 것이다. 나는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외고 떨어져도 길은 많다. 나보다 성공하길… 민혁”이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민혁이랑 친하지 않았다. ‘민혁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김민혁’이라고 지칭하는 게 편할 정도로. 그런데 이런 위로와 응원의 말을 적어준 게 감사했다. 특히 ‘나보다 성공하길’이라는 이 말이, 그 당시 대치동 아이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승자가 되기 위한 쟁탈전에서 자신보다 성공하라니. 적어도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응원을 할 수 없었다.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민혁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 했다. 하지만 나는 힘들 때마다 민혁이가 적어준 문장을 생각하곤 했다. ‘그래도 그때 나에게 자리를 내어줄 만큼 나를 응원해 주는 동료가 있었지’라는 사실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 문장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왜 민혁이는 ‘나보다 성공하길’이라고 써야 했을까? 왜 ‘우리 함께 성공하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까? 왜 우리는 응원할 때조차도 비교급을 이야기해야 했던 걸까. 그게 못내 마음 아팠다. 그래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와 민혁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누구 한 명만 더 성공하는 게 아니라, 서로 각자의 방식으로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 어쩌면 꼭 성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성공. 그 ‘성공’이라는 걸 위해 나에게 매겨진 숫자에 집착했고, 친구의 성취에 마음 편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성공은 대체 뭐였을까? 외고 입시에 합격하고,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알아주는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입지 좋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그 끝이 없는 관문들을 다 통과하면 성공인 걸까? 그 관문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그래서 네가 나보다 성공한다면, 나는 너보다 성공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은 과연 성공적인 세상인 걸까?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사실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세상. 그런 게 바로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 본문에 등장한 이름은 전부 가명입니다.


[표지 사진 출처]: 사진: UnsplashGR Stocks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Iq9SaJezk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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