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그린 Oct 18. 2023

부모님, 당신의 최선이었음을 압니다

나는 안다. 부모님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나를 대치동에서 키운 게 아니라는 것을. 한국에서 산다면 결국 입시에 아이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다. 부모님은 본인들의 최선을 다해서 내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려고 했던 것뿐이다. 특히 나는 여성이었는데도,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언젠가 시집갈 출가외인 취급하기보다는, 전문직이 되라며 뒷바라지해 주셨다. 그 희생을 알기에 결국 전문직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이 죄인 같았다. 더욱이 그런 자식이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결코 누군가에게 자랑이 되지 못할 글을 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나도 궁금하다. 적어도 내 딸이 김그린이라고 말하고 다니진 않을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사회적 시선에서 성공한 사람들 천지다. 분명 치열한 공부와 사회적 성공은 상관관계가 있긴 한 것 같다. 아마 부모님은 나에게 이런 인적 네트워크도 제공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내게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다. “너는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을 피하기 위해 나는 그들에게 연락할 수 없다. 그러다 나는 잊힌다. 최근 친구가 중학교 동창회 모임에 나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안 가겠다고 답했다. 나는 대학교 동문들에게도 죄송해서 내 글에 모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모교의 이름에 먹칠하기 싫기 때문이다. 나를 실패자라고 정의하기는 싫지만, 사회적 시선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법이다. 인적 네트워크라는 것도 내가 사회적 성공의 반열에 있어야만 유지할 수 있다.




부모님도, 나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어른들은 공부 이외의 모든 것은 대학교에 가고 나서 하라고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치열한 입시 끝에 학생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대학교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환상이 생겼다. 더 좋은 대학을 갈수록 더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공부 이외의 모든 것은 뒤로 밀어두게 되었다. 하지만 영광은 순간이었다. 나는 순간의 영광이 주는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맸다. 그리고 죄송하고, 또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나에게 누울 자리를 제공해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 누워 결국 죽으려고 했었다. 남들은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거지”라고 손가락질했지만, 그 누울 자리는 결코 안락하지 않았다. 나 하나만 사라지면 되는 일인데, 그것도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절망 속에서 나는 ‘그냥 쉰다’는 수만 명의 청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지금 나의 최선은 무엇인지. 그 끝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사회적 성취를 위해 미루고 미뤄온 나의 꿈.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삶이라지만, 더 이상 미련이 없으니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보자 싶었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구부리고 땅에 손을 짚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한 문화센터의 글쓰기 강의를 수강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학생들은 A4 1장 분량의 글을 써와야 했다. 그리고 이론 강의가 끝나면, 그 글을 사람들 앞에서 낭독해야 했다. 막상 글을 써보니 어른들이 날 뜯어말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그리 낭만적인 게 아니었다. 머리를 쥐어뜯어도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마감에 쫓겨 아무 말이라도 써 내려가야 했다. 글이 마음에 차지 않아도 공개해야 할 땐 수치스러웠다. 그래도 강의를 수료하고 자신감이 붙어 나름 이런저런 글쓰기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아, 잘 썼다!’하고 냈는데 보기 좋게 다 낙선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낙선했다는 이유로 죽고 싶지는 않다. 내 글이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고 나에게 칼날을 겨누지 않는다. 낙선한 글들은 오히려 좋은 글감이 된다. 조금만 수정해서 바로 온라인에 게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기에도 좋다. 그러다 생각했다. ‘20살 때부터 글을 썼으면 나는 글쓰기 경력이 10년은 되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낙선했더라도 쌓인 글만 족히 100편은 넘었을 것 같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휘휘 젓고 글을 쓴다. 또다시 숫자로 나를 정의하기는 싫기 때문이다.




나는 뒤늦게서야 나 자신을 마주 보게 되었다. 30살 백수가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님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 길거리에 나앉았을 것이다. 30살이 무슨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마지막 꿈을 이뤄보겠다며 글을 쓰고, 전업 자식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나는 누울 자리에 더 이상 누워만 있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 앉아 나는 글을 쓴다. 아직 당장 박차고 뛰쳐나오지는 못하지만, 나는 누워있지 않다. 그리고 글쓰기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게 작가의 길일지, 또 다른 길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답은 이제 온전히 내 손안에 달려있다.


[표지 사진 출처]: 사진: Unsplash의 Dallas Reedy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NEJFAS1Okh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